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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ug 27. 2015

그 많던 성게는 누가 다 먹었을까?

우리 곁에 있었지만 몰랐던 먹거리들

나에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것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성게'라고 대답한다. 5살쯤 됐을 때였나...어느 여름날 나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외할머니와 망상 해수욕장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는 왠 밤송이 같은 것을 반으로 가르시더니 그 안에 있는 노란 알갱이를 바닷물에 씻어 입에 넣어주셨다. 처음 맛보는 음식이었지만 부드럽고 짭짤하면서 달콤했다. 지금도 나는 성게를 맛볼 때마다 할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고 보니 진노란 성게 빛깔은 한여름 태양과도 닮았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나는 20년 가까이 성게라는 음식을 맛보지도 구경하지도 못했다. 마트는 물론이고 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냥 귀한 음식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 돈으로 식재료를 살 수 없는 시기였으니...). 한국에서 잡힌 성게는 거의 전량 일본으로 수출된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일본에 처음으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한 100엔 초밥집에서 성게 군함말이를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어릴때 할머니가 주신 성게만큼 신선하진 않았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뭔가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은 그래도 시중에서 성게를 흔히 볼 수 있는 편이다. 원인은 대륙의 성게들이 몰려들면서 한국산 성게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것. 성게잡이가 더이상 돈이 되지 않자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들은 예전보다 쉽게 성게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튼 중국산 저가 공세에 사양화된 산업은 한두 종이 아니어서 과거에는 그 비싸던 누에고치가 비단을 만드는 대신 값싼 화장도구로 전락(!)했고 누에는  약용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도 하고 생산도 많이 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맛보기 어려운 식재료들은 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키모'라고 불리는 아귀 간이다. 수산시장에서 아귀는 절대 드문 생선이 아닌데도 아귀 간을 맛봤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간만 따로 떼어 일본에 수출하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프와그라처럼 살살 녹는 아귀 간을 처음 먹어봤을 때, 나는 왜 이 맛있는 게 한국에는 없나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봄철이면 연어들이 산란을 위해 우리나라 강을 찾는다. 인간은 이 연어들을 잡아 알을 뽑아낸다. 그리고 일부는 양식을 위해 수정시키고 나머지는 또 일본에 보낸다. 신세계 SSG 같은 곳에서 연어알을 팔기는 하지만 겨우 한줌에 몇만원씩 할 정도로 고가이다. 


수산물 뿐만이 아니다. 물에서 자라는 수련과 식물인 '순채'를 들어본 사람이 있는가? 미끌미끌한 감촉의 순채는 고려 말 목은 이색이 '용의 침 같다'는 말로 그 질감을 표현했다.(나름 멋부린 표현 같긴 한데 침이라니...) 은은한 향 때문에 선비들이 특히 즐겨 먹었다는 순채는 임금에게 진상할 만큼 귀하고 맛좋은 식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순채라는 식품을 들어본 사람도 많지 않을 뿐더러 먹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일제강점기 시절, 순채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대부분을 방출해 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순채를 키울 만한 습지가 크게 줄어들어 다시 재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한다. 


와사비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와사비, 즉 고추냉이는 그 학명이 'wasabia koreana'이다. 즉 한국에서도 자생하는 토종 식물 중 하나라는 것이다.(물론 일본산과 미묘하게 맛 차이는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농가에서 재배도 많이 하고 있다.  대다수가 수출되거나 고급 호텔에 공수되는 용도이기는 하지만. 한국산 와사비가 일본에서 한 뿌리에 몇백엔씩 하는 가격에 팔리고, 상어 가죽에 갈려 최고급 요리로 대접받는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루나 튜브 와사비 맛밖에 모르고 있다.        


키위 하면 뉴질랜드지만 뉴질랜드 현지인들이 먹는 키위는 수출하고 남은 하급품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하루에 수십개의 카카오 열매를 손질하지만 정작 초콜릿을 먹어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우리 식재료가 우리 곁을 떠난 이유는 먹고 살기에 바빠 미식을 즐길 여유가 없던 환경 탓이 크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남의 땅에 건너간 것이니 일본인들을 탓할 이유는 없지만, 오늘날 일본 음식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엔 한국산 식재료의 공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씁쓸한 것은 사실이다.  


자가제작 성게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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