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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10. 2015

향신료의 무한 변주곡, 커리

세계인이 다르게 즐기는 커리 이야기

아빠는 요리사, 맛의 달인 등과 함께 ‘장수 요리만화’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으로 후나츠 카즈키의 ‘화려한 식탁’이 있다.


이 만화는 오직 ‘커리’ 한가지만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총 49권으로 비슷한 소재의 다른 만화(라면요리왕, 천하일미 돈부리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분량이 많다.


커리만으로 수십 권에 이르는 만화 연재가 가능한 이유는, 커리라는 요리의 베리에이션이 상당히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한때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한국카레라이스가 없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적절하다.


인도인들은 우리의 장 종류처럼, 집집마다 다른 맛을 내는 가람 마살라를 기본으로 치킨과 시금치, 요거트 등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커리를 만든다.


커리가 전 세계를 도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영국의 식민 지배이다. 낯선 커리 맛에 매료된 영국인들은 자신들 식으로 커리를 받아들였다.


감자와 당근, 양파 등을 썰어 넣고 일종의 스튜처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서양식 커리에는 생크림과 부케가르니, 치킨 스톡 같은 양식 재료들이 들어간다.


영국인들을 통해 커리를 배우고, 본격적으로 발전(?) 시킨 이들이 바로 일본인들이다. 일본에 건너온 커리는 현지인들의 입에 맞지 않는 가람 마살라 등 향이 강한 재료들이 빠졌다.


또 고형, 혹은 가루 형태의 인스턴트 제품이 나오면서 커리는 집에 남은 채소와 고기를 죄다 때려 넣어(!) 간단히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으로 자리 잡는다.


만들기 쉬운데다가 여러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보니 일본인들에게 커리는 ‘엄마가 만들어준 가정식’ 이미지가 강하다. 훗카이도 식의 스프 커리를 비롯해 카레빵, 카레우동 등 카레를 이용한 다양한 식품들도 발달해 있다.  


한편 지역이 인접해 있다 보니 커리가 자연스럽게 퍼진 곳이 동남아시아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발달한 동남아식 커리는 피시 소스와 코코넛 밀크 등의 재료가 들어가면서 인도나 일본식 커리와는 또 다른 맛을 낸다.


아랍풍의 커리도 있다. 대학로 성균관대 정문 맞은편에 자리잡은 ‘페르시아 궁전’은 이란 커리 전문점이다. 향신료를 다양하게 이용하고 매운 맛을 강조해 인기였으나 최근에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그냥 카레라이스 맛이 되어버려 안습...ㅠㅠ  


의외로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알려졌는지 커리를 뜻하는 '카'라는 한자가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이유로 커리가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왠지 커리에 건강식 이미지가 더해졌다. 특히 강황의 효능을 강조한 백세카레가 웰빙 열풍으로 인기를 끌면서 시중에는 온통 샛노란 카레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강황이 마치 커리의 핵심 성분이면서 만병통치약(!)쯤 되는 것으로 파악하면 곤란하다. 원조인 인도 커리에는 강황 말고도 카르다몸, 사프란, 쿠민 등 다양한 향신료가 배합돼 조화로운 맛을 낸다.


또 커리에 쓰이는 향신료 대부분은 각자의 약효 성분이 있다. 이 다양한 약리작용은 무시한 채 강황의 효능만을 앞세우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세계를 정복한 음식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비빔밥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데는 굳이 꼭 정해진 재료를 쓰지 않더라도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다는 이유가 크다.


커리 역시 이처럼 무한대로 변주되면서 각 나라의 음식문화를 풍족하게 만드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도 샛노란 강황 가루로만 커리를 인식할 것이 아니라, 커리를 통해 보다 다양한 맛의 세계에 입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뱀발: 개인적으로, 내 가장 좋아하는 카레는 토마토와 레드와인을 넣어 만든 치킨 카레이다. 한 개 정도 썰어 넣는 완숙 토마토는 새콤한 맛과 함께 부드러운 식감을 준다. 나밖에 만들 수 없는 이 카레 레시피가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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