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2일은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탄생한 날이다. 또 1969년 같은 날에는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이 향년 79세로 사망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오랫동안 한국과 교류가 없었으나 음식문화는 생각보다 일찍 전해졌다.
월남전 이후 보트피플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쌀국수 '퍼'가 이국적인 별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90년대 초부터 한국에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쌀국수집이 하나씩 생겨났다.
고수를 비롯한 향신료가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이 심해 초창기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기본적으로 쇠고기 육수+매운맛이라는 '맛없없' 조합이 어필하면서 안착하게 된다.
여기에 웰빙 열풍이 불면서 담백한 맛에 채소가 듬뿍 들어간 퍼는 건강식으로 2030 여성들 사이에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사실 베트남인들에게 퍼는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가 스며 있는 음식이다. 베트남을 지배하던 프랑스인들은 쇠고기 스튜인 '포토푀'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 요리는 건더기인 고기와 채소만 건져 먹는다.
퍼의 종류는 지역마다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라임을 곁들이는 것은 공통이다. 쥐똥고추라고 불리는 매운 맛 강한 고추에 얇게 썰어 초절임한 양파, 공심채와 숙주 등도 듬뿍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게 먹었던 퍼는 다낭 여행 때 숙소에서 나왔던 닭육수 베이스의 국수였다. 별다른 고명도 없이 대충 삶은 듯한 비주얼이지만 'Simple is vest'라는 말이 떠오를만큼 깊은맛이 인상적이다.
미국을 통해 들어온 퍼와 대조적으로, 냉비빔면에 가까운 '분짜'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졌다. 그 이유는 이 요리가 공산정권이 지배하던 북베트남 지역의 요리이기 때문이다.
분짜는 과거 동유럽, 소비에트 등으로 유학간 베트남 학생들이 정착하면서 서구에 전파됐다. 당연히 냉전시대엔 한국인들이 모를 수 밖에 없었고, 냉전 종식 후 알음알음 대중화되는 모양새다.
냉면이 남북 분단의 상징이 된 것처럼, 같은 쌀국수지만 퍼와 분짜는 다르게 진화했다. 어쩌면 국부 호찌민은 퍼보다 분짜를 선호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