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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30. 2015

자유로운 영혼, 이사도라 덩컨

현대무용 창시자가 즐긴 아스파라거스와 캐비어 

‘명사들의 식탐일기’라는 매거진을 기획하고 소재를 수집하는 동안 필자가 아쉬워한 부분 하나가 있다. 바로 ‘여자 명사들’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의 사회활동이 지금만큼 자유로웠던 때가 없었기 때문에 여자 명사의 절대수가 적은 것도 있다. 아이들이 보는 위인전 시리즈 중 3분의2 이상은 남자 위인들인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유가 그것 뿐만은 아니다. 마리 퀴리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특히 ‘성녀’ 이미지를 가진 나이팅게일은 식탐과는 거리가 먼 존재처럼 여겨진다. 


“멜라니 아가씨는 새처럼 조금 드시는데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파티에 가기 전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스칼렛에게 마미는 이런 말로 일침을 놓는다. 


이처럼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여성의 식탐은 ‘죄악’까지는 아니지만 품위 없는 행동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이런 선입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이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사도라 덩컨이다. 


사실 굳이 음식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이사도라 덩컨의 삶은 ‘자유’라는 한 단어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그녀는 클래식 발레의 엄격함에서 탈피해 맨발로 춤을 췄으며, 세 아이들의 아버지가 모두 다를 만큼 성적으로도 자유로웠다. 


이처럼 무한한 자유를 추구해온 이사도라의 삶이 순탄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가의 꿈을 키워온 그녀는 클래식 발레가 틀에 박힌 방식이라며 반발, 자신만의 춤 세계를 열기 시작했다. 


이사도라 덩컨은 1899년 시카고에서 맨발에 반나체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으나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했고, 실망한 그녀는 다음해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다. 


다행히 런던에서의 리사이틀은 성공적이었으며, 이후 파리와 부다페스트, 베를린 등 유럽 각지를 순방했다.


그녀의 춤은 반쯤은 즉흥적인 것이었으며, 술의 신 바커스의 무녀에서 모티브를 얻어 도취된 듯한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녀의 행보는 자유롭고 거침없었다. 무대 예술가인 고든 크레이크와 대부호 파리 싱어, 러시아 시인 예세닌 등 많은 남자들과 교제했으며 "나는 능수능란한 손길에 전율하는 하나의 감각 덩어리가 됐다"는 말을 남긴다. 


세상 사람들에게 문란한 여자라며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덩컨은 “내 인생은 오직 두 개의 동기를 갖고 있다. 사랑과 예술이 그것인데 이들은 끊임없이 싸운다. 왜냐하면 사랑도, 예술도 나의 전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라며 끝까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이사도라의 사진을 보면 무용가 치고는 체격이 크고 통통한 편이다. 예술과 사랑에 불을 붙일 연료가 필요했던 것인지, 그녀는 먹는 것을 좋아했고 대식가였다고 전해진다.


유럽에서 집시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가 하면, 아스파라거스와 캐비어 같은 고급 음식들을 즐겨 먹기도 했다.


어느 파티에서 이사도라는 “산처럼 쌓인 아스파라거스와 캐비어, 딸기와 샴페인을 먹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스파라거스와 캐비어는 아시아의 장어와 마찬가지로, 둘 다 서구권에서 스테미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식품이다. 그린 아스파라거스가 풋풋한 봄의 맛을 지녔다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절제되고 우아한 맛을 지니고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수확한 지 하루 안에 먹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로 선도가 생명인 채소이며, 경사가 급한 냄비에 세워서 삶는다. 뜨거운 버터를 끼얹어 먹으면 아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이사도라 덩컨의 캐비어 사랑에는 러시아 애인인 예세닌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철갑상어 알은 버터가 없으면 대용으로 빵에 발라먹을 정도로 흔한 식품이었다고 한다. 


보통은 캐비어를 까만색 알로 알고 있는데 이는 캐비어의 대체품인 럼피쉬 알인 경우가 많다. 상급에 속하는 캐비어는 짙은 회색을 띄고 있으며 기름기가 있기 때문에 살짝 끈적거리면서 은은한 짠맛을 낸다.


큰철갑상어가 알을 까려면 최소한 20년 이상 성장해야 한다. 캐비어 가격이 비싼 이유는 이 때문이다. 캐비어는 벨루가, 세브루가, 오세트라로 등급이 나눠지며 러시아에서는 보통 메밀 팬케이크인 블리니에 사워크림과 캐비어를 함께 얹어 먹는다.


이사도라가 소원한 대로 산처럼 쌓인 아스파라거스와 캐비어를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점이다. 마치 자신을 불태우듯 사랑과 예술에 모든 것을 건 이사도라는 여성에 대한 억압에 도전하는 혁명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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