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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30. 2015

송강 정철의 못말리는 술 사랑

자연의 운치를 담아낸 전통주의 세계

전국 63만여 수험생들에게 언어영역의 ‘공공의 적’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사람이 1위를 차지할 것이다. 바로 난해하기로 이름난 가사 ‘관동별곡’의 송강 정철이다. 


최근 드라마 ‘툰드라쇼’ ‘조선왕조 실톡’에 정철의 고약한 술버릇이 소재로 등장하면서 그의 사생활 이야기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정철과 동시대를 살았던 오성 이항복은 그에 대해 “송강이 반쯤 취해서 즐겁게 손뼉을 마주치며 이야기 나눌 때 보면 마치 하늘나라 사람인 듯 하지”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묘사에 따르면 그는 술을 즐기는 풍류랑의 이미지였던 것 같다. 


다만 문제는 그가 정치인도 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관료로서의 그는 무능하거나 부패한 인물은 아니었다.  송강은 훈신정치의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사림의 시대에 맞는 정치를 확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또한 그는 ‘격탁양청’, 탁한 것을 몰아내고 맑은 것을 끌어들인다는 말로 투명한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서인의 영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 술에 취해 긴급회의를 결석하는가 하면, 몇 번이나 “술주정 심하고 행실이 그릇되다”라며 탄핵을 당한다. 


이 때문에 수 차례의 파직을 거쳤으나 선조의 신임이 두터웠던 탓에 재임용되기를 반복한다. 선조가 그의 술주정을 우려해 작은 은잔으로 세 잔만 마실 것을 명했으나, 이를 펴서 커다란 주발로 만들어 독한 술을 마음껏 마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도 명작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의 가사 작품들은 대부분 술기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정철에게 술은 평생 함께한 친구와 같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 ‘장진주사’를 보면 술과 함께 풍류를 즐겼던 송강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가며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줄에 매어 가나/ 호화로운 관 앞에 만 사람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야/ 뉘우친 들 어떠리”


요즘 식으로 풀이한다면 이 시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정도의 메시지로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는 관직에 있는 것보다는 자연과 벗하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쪽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표작은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4편의 가사이며 시조는 107수가 현대까지 전해지고 있다. 


정철의 문학 세계는 인간미가 넘치며, 산호 강수의 자연미를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또한 신선과도 같은 기풍과 호방함을 담아내기도 했다.  


송강 정철이 생전에 즐겨 마셨다는 술은 어떤 종류였을까. 정확히는 알 길이 없으나 그는 고위 관료였으니 서민들이 마시는 막걸리보다는 약주나 소주를 마셨을 가능성이 크다. 


전통술의 범위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고려시대 말에는 소주가 원나라에서 전래됐으며, 이 시기에는 포도주와 중양국주가 인기였다고 한다. 단오날에 창포주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다양한 전통주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술을 마시는 데 있어 운치를 상당히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풍류객들은 대나무순을 땅에 넣어 익히는 송순주, 연꽃잎으로 향을 낸 하엽청주, 소나무 꽃가루로 만든 송화주, 복숭아꽃을 재료로 한 도화주 등을 나들이나 연회 때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밖에 문배나무 열매 향이 난다는 문배주는 48.1의 독주로 강렬하고도 과일의 풍미가 살아있는 맛을 낸다. 


약으로도 쓰였다는 면천 두견주는 진달래꽃으로 만든다. 이 술은 만드는 방법이 꽤 까다롭다. 수만 송이에 이르는 진달래꽃에서 독 성분이 있는 수술을 일일이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견주는 산림경제, 임원십육지, 규합총서 등 다양한 문헌에 소개돼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싱싱한 소나무 가지의 마디와 솔잎 등을 이용해 만든 송절주는 조선 성종 때 충정공 이정란의 집안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정철도 이 술을 마셔 보았을지 모른다.   


한산 소곡주는 한 선비가 과거보러 한양으로 가다가 주막에서 이 술을 마시고 흥이 돋아 달구경을 하다 과거 날짜를 놓쳐 버렸다 해서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자연에서 얻은 온갖 재료로 빚어낸 전통주의 세계는 이처럼 무궁무진하다. 다만 일제 시대 바뀐 주세법 때문에 재래식 소주 등의 명맥이 끊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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