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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Oct 27. 2015

그녀, 전혜린과 아련한 유럽의 맛

한국 여성이 엿본 1950년대 유럽 식문화  

"더욱 짙어진 안개와 어둑어둑한 모색 속에서 그 등이 하나씩 하나씩 켜지던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짙은 잿빛 베일을 뚫고 엷게 비치던 레몬색 불빛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내가 유럽을 그리 원한다면 안개와 가스등 때문인 것이다..."


나의 사춘기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줬던 이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전혜린'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것이다. 중학교 때 읽었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수필집에서 발견한 그녀는 신비롭고 낭만적이었으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워너비 모델이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엘리트 이미지, 당시로서는 드물게 '유럽'이라는 세계를 경험하고 왔다는 것, 그리고 고독과 애잔함이 담긴 그녀의 글들은 어린 나를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전혜린의 수필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글 하나가 유럽에서 맛본 다양한 음식들에 대한 것이었다. 엄격한 법관 집안의 장녀였던 그녀는 어린 시절 음식에 대한 달콤한 추억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먹는 것, 입는 것에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 학구적인 분위기와 이성적 사고가 집안을 지배하고 있었던 탓이라고...


그런 그녀가 유럽에 와서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뜨게 된다. 23세의 나이로 독일 땅을 밟은 전혜린은 한때 레지스탕스의 본거지였다는 제에로제라는 식당을 처음으로 찾았고, 처음에는 낯선 음식에 먹먹해하다 곧 이곳의 단골이 된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다 보니 처음에는 간단히, 소량씩만 식사를 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하얀 소시지를 불에 구워 겨자를 곁들여 먹는 것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고, 군밤 한 봉지를 사와 강의실에서 주전부리를 하기도 했다고. 


돈이 떨어져 갈 때는 스파게티를 삶아서 호배추 김치와 함께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날씨가 추워질 무렵에는 데운 맥주나 그로그(럼주와 뜨거운 물을 섞은 칵테일), 글류바인으로 추위를 달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국에서는 멀드 와인, 프랑스에서는 뱅쇼라고 불리는 글류바인은 와인에 스타 아니스와 계피, 레몬, 정향 등 향신료와 설탕을 섞어 끓인 음료이다. 알콜이 날아갔기 때문에 마셔도 취하지 않으며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겨울철 길거리 음료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뜨겁게 해서 한잔 마시면 초기 감기에 즉효이다.   


한국에서 건너온 남편과 결혼하면서 전혜린은 본격적으로 유럽 음식의 세계에 동화돼 갔으며, 집에서 한국 요리를 해먹는 데도 익숙해졌다고 한다. 청어와 피망고기조림 같은 음식에 빠져드는가 하면 매운 맛이 그리울 때는 헝가리안 굴라쉬를 먹으러 갔다.


수필에는 ‘무섭게 매운 헝가리 고추’라고 묘사돼 있는데 사실 굴라쉬에 들어가는 파프리카는 매운맛이 강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때가 1950년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당시에는 한국음식이 지금만큼은 맵지 않았으므로) 전혜린에게는 충분히 매웠을 수도 있다.  


그밖에 브뤼셀 여행 중 맛본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빵(아마도 하드롤 종류였던 듯), 초에 절인 날재어(네덜란드식 청어절임을 말하는 듯하다)를 꼭꼭 씹어 먹던 맛, 공원에 소풍 나가 마셨던 차가운 흑맥주 등 맛있는 이야기들이 줄을 잇는다. 


커피 이야기도 묘사된다. 이탈리아 커피점에서 전혜린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처음 맛보며 생크림을 쌓아올린 ‘카푸치나’라는 커피 맛에 반한다. 독한 터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밤새 잠을 못 잤던 기억도 떠올린다.


그녀는 다시 유럽을 찾는다면 한국에서 먹을 수 없던 생크림을 듬뿍 올려 커피를 마시겠다고 하는가 하면 맥주 한 조끼를 단숨에 마시며 잃어버렸던 20대를 되찾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치고 있다. 


서구 문명에 푹 빠져든 듯한 그녀를 어떤 이들은 된장녀의 원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2병에 똘끼 충만한 캐릭터로 비하하기도 하는데 사실 예술 한다는 인간이 똘끼 하나 없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 아닌가. 


그밖에 친일 관료였던 아버지, 저작의 대부분이 번역물에 그치고 있다는 것, 보통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기행을 일삼았다는 점과 자살의혹까지... 한국 문학사에서 그녀는 유명인사이기는 해도 천재나 위대한 예술가로는 불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결정적인 이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조르주 상드나 루 살로메처럼, 교류했던 남성들이나 파격적인 행보 등으로만 알려진 그녀를 문인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태워 버릴 정도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전혜린의 삶은 사춘기를 지나 중년기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짧은 생 동안 전혜린이 꿈꿔왔던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 유럽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슈바빙 거리를 찾아가 글류바인 한 잔을 놓고,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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