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건강식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를 보면 연을 먹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식인 연밥을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에게 먹였고, 부하들은 몽롱한 기분에 빠져 고향 생각을 잊었다고 한다.
연을 식량으로 삼았다면 적어도 유럽에 있는 나라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일화는 미지의 아시아 문명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연밥은 환각(?)까지는 아니지만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작용을 한다. 한의학에 따르면 연밥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뛰어나며, 또한 신경과민과 우울증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밥에는 녹말 성분이 많아 은은한 단맛이 있으며, 불에 구우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더 강해진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금영이 경합 때 내놓는 오자죽에는 호두와 복숭아씨 외에 연밥도 들어있다. 연밥은 비타민 C와 B1, B2, 철분 칼슘, 인, 나이아신 등이 골고루 들어간 영양식이라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사람들은 말린 연밥을 수프와 스튜에 넣는다고 하며, 중국에서는 주로 디저트 재료로 사용된다. 페이스트 형태로 만든 달콤한 연밥은 빵이나 월병에 소로 넣으며, 설탕에 절인 연밥을 춘절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한다.
대만에서 시작돼 현재 중국 본토까지 퍼진 디저트 체인 ‘허니문 디저트’에는 차가운 코코넛 밀크에 연밥을 넣은 간식이 있는데 미용용으로 여성들에게 특히 사랑받고 있다.
연은 버릴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연근으로는 정과나 연근죽 등을 만들어 먹으며 구멍에 불린 쌀을 채워 조린 달착지근한 디저트도 별미이다.
일본 쿠마모토 지방에서는 연근에 겨자를 채워 튀겨낸 요리가 지역 명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연근 녹말로는 경단이나 응이 등을 만들 수 있으며 간장에 짭짤하게 조려 반찬으로도 먹는다. 연근과 우엉, 당근 등 뿌리 채소를 듬뿍 넣은 가메니(닭고기 야채조림)는 일본의 국민반찬 중 하나이다.
어린 연잎은 살짝 대처 쌈을 하고, 큰 연잎으로는 술을 담그거나 연잎밥을 만든다. 찹쌀에 연밥, 연근, 팥이나 밤 같은 각종 고명을 넣어 연잎으로 감싸 찐 연잎밥은 사찰음식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중국에서는 연잎밥 안에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선비들은 연잎을 술잔으로 쓰기도 했다. 연잎에 술을 부은 후 마치 코끼리 코처럼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는 술을 받아 마시면 연잎 향도 배면서 풍류가 일품이다.
꽃 역시 차로 즐기는 이들이 많다. 하얗고 향이 진한 연꽃에 찬물을 부어 가며 마시는 백련차를 비롯해 연꽃을 잘라 진한 차를 꽃 속에 부은 후 꽃잎을 오므려 묶어 꽃향기가 배어나게 하는 차도 있다.
‘부생육기’라는 책에는 얇은 비단에 싼 차를 연꽃 가운데 넣었다가 다음날 아침 꽃잎이 벌어질 때 꺼내어 차를 달여 마신다는 언급이 나온다. 연꽃이나 연잎에 맺힌 이슬을 털어 ‘하로차’라고 하여 마시기도 하며, 이를 엿으로 고아 ‘하로당’이라는 미용식을 만들기도 했다.
여름철 강릉 선교장에 가면 호수 안에 가득 핀 연꽃을 감상할 수 있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은 자비로운 부처의 정신을 상징할 뿐 아니라, 식용과 약용으로 인간에게 두루 유익한 식물이라 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