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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왕권을 잠식한다

요즘의 사극 보고 든 단상들...

by Sejin Jeung

(솔직히 말하면 요즘 사극 보고 든 단상이 아니라... 항상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비록 음식 글은 아니지만 잼있게 읽어주세요..)


대학시절 짝사랑하던 선배와 오태석 연출의 사도세자 소재 연극 '부자유친'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연극의 내용보다는 선배의 표정에 더 관심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못한게 후회가 됐으나... 그럼에도 끊임없이 들려오던 영조의 대사만큼은 기억에 박혔다.


"니가 죽으면 이 나라 종묘사직이 무사할 것..."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끔찍한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것을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대결구도(서양에선 오이디푸스)로 풀이하고 싶다.


일단 조선조 왕 중에서 아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온갖 찌질함을 보인 왕을 꼽아보자.


선조와 광해군이 있고, 인조와 소현세자가 있었다. 마지막이 영조와 사도세자.


이 세 왕의 공통점은 모두 서출이고, 신하들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사실 조선 건국 초기 태조, 태종 등은 왕건을 굳건히 하기 위해 때로는 정도전 같은 심복을 처단하기도 하는 강력한 정책을 폈다. 수양대군 세조가 사육신을 처단하고 조카까지 죽인 것은 왕권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극단의 조치였다.


죽은 의경세자의 아들, 그것도 차남이었던 성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살짝 불안했던건 강력한 두 어머니, 정희대비와 인수대비가 실드를 쳐줬다.


그러던게...연산군 이 또라이가 막장짓 벌이는 바람에 쫓겨나고 진성대군이 반정군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 애초에 신하가 추대한 임금이 찍 소리나 낼 수 있겠는가? 조선의 왕권은 이때부터 흔들림을 겪기 시작했고 '설공찬전'이라는 소설에서는 이로 인한 부작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가 현실화된건 명종이 후사 없이 죽고 최초로 서출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면서다. 기반이 불안한 선조는 자신의 위치에 끊임없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세자만큼은 적자를 올려 자기같은 일을 겪지 않게 만들려 했을 것이다.(그럴거면 첫 마누라한테나 잘하지 그랬냐...--;;;)


물론 그 이면에는 임진왜란 때 백성들로부터 인정받은 광해군에 대한 인간적 질투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 때문에 똑똑하고 능력 있었던 광해군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아들뻘 되는 되는 이복동생에게 밀리게 생기자 계모를 유폐하고 아우를 죽이는 무리수를 둔다.


선조가 적어도 광해군을 자신의 후계자로 뒷받침해줬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같은 데서 묘사되는 선조의 찌질함은 역으로 그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두 번째 케이스가 인조. 마찬가지로 그도 반정에 의해 왕위를 얻은지라 병자호란 같은 국가 재난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었다. 결국 뒷처리는 신하들이 다 하게 만들고는..왕으로 있는 쪽 없는 쪽 다 팔리고 아들들 볼모로 보내고 백성들에게는 갖은 눈총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인조가 청을 배워야 한다는 소현세자를 곱게 볼리가 없고(애비 맘도 모르고!) 결국은 모두가 다 아는 불행한 결과....


영조의 경우 두 왕에 비해 조금 낫기는 하다. 정치만큼은 안정적으로 했으니...


하지만 그 역시 노론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신하들을 제대로 컨트롤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음모론까지..


자신도 같은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영조를 평생 따라다녔고, 그 불안이 아들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후세 학자들 이덕일의 분석이다.


한 예로, 그는 화평옹주나 화완옹주 같은 딸내미들은 끔찍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왕위에 위협을 주지 않는 딸에게는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어찌 보면 이들 세 왕 모두 신권에 휘둘린 피해자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실록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와 왕정 사회를 비교하는건 애초에 무리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기득권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조선 중반 이후의 정치가 왕도정치라기보다는 사실상 양반으로 대표되는 '가진자'의 정치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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