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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름이 뭐니?

한중일 3국의 요리 작명센스

by Sejin Jeung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다 보면 가끔 의문이 든다. 저 기발한 요리 이름들을 전부 셰프들이 지었을까? 작가가 개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중일의 희한한 요리 이름들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일단 우리나라. 궁중요리에 관심이 좀 있다면 승기악탕이라는 요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국수를 바닥에 깔고 큼직한 도미를 얹은 후 색색가지 고명으로 장식하는 이 요리는 주로 연회 음식이었다고 한다. 승은 '이기다'라는 뜻의 승이며 '기악'은 기생이 연주하는 음악을 말한다. 즉 이 요리는 기생의 가야금 연주 듣는 재미보다 낫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무래도 잔치 음식이다 보니 붙여진 이름 같다.


다음 요리는 이름이 좀 살벌하다. 바로 '성계육'.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수도의 자리를 빼앗긴 개성 사람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가 돼지띠인 것에 착안, 통째로 푹 삶은 돼지고기를 성계육이라고 부르며 최영 장군에게 제사를 지낼 때 상에 올렸다고 한다. 개성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이성계의 고기를 씹는 상상을 하며 달랬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쇠고기를 돼지고기보다 선호하는 데 비해 개성 지역에서는 유독 돼지고기 사랑이 각별하다.


석탄병이라는, 다소 묘한 이름의 떡도 있다. 물론 불 피우는 그 석탄(!)이 아니라 삼키기가 아깝다는 뜻의 惜呑이다. 규합총서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석탄병은 멥쌀가루에 감가루를 섞고, 설탕물을 넣어 체에 내린후 잣가루, 생강, 귤병, 계핏가루, 대추, 밤 등을 섞는다. 녹두고물을 깔고 그 위에 떡가루를 넣고 녹두고물을 얹어 시루에 쪄내면 완성된다. 이름처럼 사르르 녹는 맛있는 떡이지만 보다시피 만드는 법이 까다로워 쉽게 맛볼 수는 없다.


그밖에도 시골 향토 음식들 중엔 재미있는 이름들이 꽤 있다. 쫀득쫀득 탄력이 넘친다는 콧등치기 국수, 물리도록 먹어 꼴두 보기 싫다는 꼴두국수, 옥수수가루로 만들며 특이한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 '올챙이 국수'등이다. (쓰다보니 죄다 국수 이름이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자주 먹지 않는 별식이다 보니 이름도 별나게 지은게 아닌가 추측됨...)

이번엔 일본으로 가보자. 역시 좀 뭔가 꺼림칙할 수 있는 요리 이름으로 '오야코동'이라는 게 있다. 뜻은 부모자식 덮밥. 아버지인 닭고기와 아들인 달걀을 함께 사용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닭고기를 돼지고기로 바꾼 덮밥 이름은 '타인 덮밥' --;;;;


철판에 야채와 함께 양고기를 구워 먹는'징기스칸'의 유래는 조금 씁쓸하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만주를 공략하는 등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화 되던 시절이다. 당시 학자들은 야마토 민족이 대륙 기마민족의 후손이라는 학설을 퍼뜨렸다. 양고기 하면 자연스럽게 유목민이 떠오른다. 또 일본의 고대 인물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몽골로 숨어들어가 징기즈 칸이 됐다는 황당한 전설도 이 요리의 작명에 한몫을 했다.


이름은 좀 씁쓸하지만 어쨌거나 징기스칸은 훗카이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명물 요리로 꼽힌다. 털을 깎기 위해 들여온 늙은 머튼의 누린내를 잡기 위해 우리의 불고기 양념과 비슷한 진한 양념을 하고 숙주, 양파, 피망 등 다양한 채소를 곁들인다. 요즘은 냄새가 적은 램이 대부분이지만 중장년층 중에는 그래도 머튼을 써야 제맛이라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국에서는 상수역 부근에 있는 '라무진'이라는 가게에서 징기즈칸을 맛볼 수 있다. 의외로 맛이 깔끔하고, 사장님이 친절해서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밖에 초밥집이나 가이세키 요리점에 가면 온갖 자연물에 빗댄 요상한 요리 이름들이 많지만 너무 종류가 방대한 데다가 설명해도 알 만한 메뉴들이 별로 없으니 오늘은 패스하기로 하겠다..... (일본어에 동음이의어가 많다보니 만담, 즉 말장난이 발달한 것도 있어서...)


중국 하면 식도락의 중심지답게 시적인 요리 이름들이 많이 있다. 일단은 중국 3대 미녀 중 하나인 서시와 관련된 메뉴를 보자. 황해에서 나는 '사합'이라는 조개를 볶은 요리는 서시의 혀와 같다고 해서 '서시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소주 지역 특산물인 연뿌리는 서시의 팔, '서시비'로 불린다. 그리고 수컷 복어의 하얀 이리는 서시의 ..(자체 검열삭제) 이라는 뜻으로 '서시유'라 한다.


그런가 하면 춘추전국시절 초나라 패왕의 첩 우희가 패왕을 위해 만들었다는 요리 이름은 '패왕별희'이다. 이른바 '용봉탕'이라고도 불리는, 자라와 닭고기를 푹 고아내 만든 탕 요리이다. 자라는 남성인 항우를, 닭고기는 여성인 우희를 상징한다. 참고로 자라, 거북이라는 단어는 중국 전역에서 욕으로 쓰이기 때문에 요리 재료로 쓰였다 하더라도 그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반월침강'이라는 요리도 있다. 표고버섯에 각종 야채로 맛을 낸 수제비가 들어간 국물 요리인데 문학가인 곽말약이 푸젠성 하문에 있는 절 남보타를 유람한 후 이 요리를 먹으며 "반달이 물에 잠기고 천봉이 눈에 들어온다"고 즉흥시를 지은 데서 유래했다. 까만 표고와 하얀 수제비가 마치 반달 같다고 표현한 것. 참고로 남보타는 중국에서 색다른 채식 요리로 유명한 절이다.


오래 전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후덕죽 셰프는 중국에 직접 건너가 배워온 요리 '불도장'을 선보였다가 한동안 그 이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상어 지느러미에 생선 부레, 제비집, 말린 전복 등 최고급 식재료를 푹 고은 스프인 불도장은 수행중인 스님이 냄새에 이끌려 담을 넘었다고 하는 전설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요리가 인기를 끄니 불교계에서 항의가 들어왔다고...--;;;;(담 안넘으심 되잖아요...)


아마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가 이전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도 옛 사람들은 요리에 색다른 작명센스를 발휘하는 여유가 있었으니(물론 거의 특권층에 한정된 얘기긴 하지만..) 지금보다 그때가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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