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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Mar 17. 2016

고통을 이겨낸 예술가의 레시피

프리다 칼로와 그녀가 만든 음식들

"요리할 땐 잡생각이 안 들잖아요? 그래서 난 심란한 일이 있어도 밥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져요"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어제 뭐 먹었어?’에 나오는 이 대사에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것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가사노동 중 가장 창조적인 활동으로 ‘요리’를 꼽은 바 있다. 청소나 빨래 등과 달리 본인의 상상력과 기술이 개입할 여지가 많고, 또 보잘 것 없는 식재료로도 예술작품에 가까운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의 여주인공 티타는 요리를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주방의 여신이다. 첫사랑을 형부로 맞아야 했던 고통과 한 많은 세월을 견디게 해준 것은 요리였다. 


몽환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 역시 그림과 함께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힘겨운 삶을 버텨냈다고 한다.


의사를 꿈꾸던 영리하고 아름다운 소녀 프리다에게는 뜻하지 않은 두 가지 사고가 닥쳐온다. 한 번은 18세때 버스를 타고 가다 당한 교통사고이며, 두 번째는 남편이자 동지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이었다. 


버스 사고로 프리다는 척추와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치게 된다.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육체적 고통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고, 이 아픔은 프리다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 나가는 시발점이 된다.  


사회주의 혁명에 심취해 있던 그녀는 멕시코 문화운동을 주도한 예술과 디에고 리베라와 만나 그의 작품과 인간적 매력에 빠진다. 둘은 1929년 21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하지만 프리다를 기다리고 있는 삶은 동화 같은 로맨스가 아니었다. 


디에고는 프리다를 만나기 전 두 번 이혼한 경력이 있으며,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외도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외도 상대 중에는 프리다의 친 여동생인 크리스티나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프리다는 자신의 작품에 열중하는 대신 리베라를 극진히 내조했으며, 살아 있는 동안 마치 남편의 그림자처럼 살았다. 화가로서 그녀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도 프리다는 디에고라는 존재를 끝까지 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위안을 준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디에고의 전처 과달루페였다. 


과달루페는 디에고와 동료 예술가들이 즐겨 먹었던 자신의 요리 레시피를 프리다에게 전수해 주었고, 프리다는 요리를 통해 고독과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된다. 


프리다가 남긴 레시피는 후일 리베라와 과달루페 사이에서 난 딸 루페 마린이 책으로 엮어 출간하기도 했다. 


그녀가 파티에서 주로 만든 요리들은 호두 소스와 칠리, 호박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옥수수 반죽을 쪄낸 빵의 일종인 타말레스 등이 있었다. 


또 그린 소스에 찍어 먹는 나초와 호박꽃 수프, 노팔스 선인장을 곁들인 돼지고기 요리 등이 리베라 가의 만찬에 차려졌다. 그들의 집에 모인 예술가들은 데킬라를 홀짝이며 아보카도와 돼지껍질 튀김을 안주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오늘날의 멕시코 요리는 원주민들이 먹던 전통 방식에 스페인 요리가 융합된 형태라고 보면 된다. 우리에게는 낯선 식재료들이 대부분이지만 자극적이고 칼칼한 맛이 의외로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북미에서 멕시코 요리 하면 매운 음식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으며, 히스패닉 이민자들에 의해 전해진 본토 멕시코 요리는 사워크림과 치즈 등이 듬뿍 들어간 ‘텍스맥스’ 스타일로 바뀌었다. (제 아무리 건강식도 무릎꿇게 만드는 천조국의 기상...)


미국을 방문했다가 타코벨이나 치폴레에서 텍스맥스 요리를 맛보고 너무 느끼하다고 여겼다면 정통 멕시코식 메뉴를 맛보기를 권한다. 특히 멕시코 이민자들이 주말이면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파는 타코는 미국식 타코와 달리 담백하다. 


수육처럼 푹 삶아낸 고기에 두세 가지 매콤한 소스와 야채가 듬뿍 곁들여지며, 위에는 실란트로(고수)잎을 뿌린다. 소스가 줄줄 흘러서 먹기엔 조금 고역이지만 여자들도 한 번에 두세 개는 거뜬히 해치울 만큼 맛있고 영양가도 많다. 


한국에서 비교적 멕시코 스타일에 가깝게 하는 곳을 찾으려면 이태원 멕시칸 요리집이나 프렌차이즈 타코를 파는 ‘도스 타코스’에 가면 된다. 이태원의 타코집 사장님들은 종종 주문 받을 때 한국인이 오면 “고수 빼고”라고 해주는 ‘센스’를 발휘하시기도 한다....(고수를 좋아한다면 미리 넣어달라고 하면 된다.)


화끈하고 자극적인 멕시코 요리는 정열적인 히스패닉 사람들의 기질과도 닮았다. 프리다의 힘겨운 삶을 지탱해준 것도 사랑과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열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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