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대표 쿡방 비교분석
얼마 전 해체 위기설이 돌았던 일본의 국민 아이돌 스맙은 자신들의 이름을 건 버라이어티 ‘SMAP☓SMAP’을 10여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코너는 인기 스타나 명사들을 초대해 두 팀으로 멤버를 나눠 요리를 대접하고 승부를 겨루는 ‘비스트로 스맙’이라는 것이다. 이 코너는 상당부분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겹치는 부분이 많으며,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10여년 전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쿡방 ‘비스트로 스맙’과 이제 1년을 처음 넘긴 ‘냉장고를 부탁해’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짚어보고, 한국형 쿡방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살아남으려면 어떤 것들을 개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비스트로 스맙과 ‘냉장고’의 공통점
사실 필자가 ‘냉장고를 부탁해’를 처음 보았을 때 받은 인상은 ‘비스트로 스맙’과 상당히 컨셉이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우선 인기 스타, 혹은 유명인사가 게스트로 출연한다는 점, 또 두 팀(혹은 개인)으로 나누어 시간제한을 두고 승패를 가른다는 점, 구체적으로 요리명을 대기보다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음식’, ‘에스닉하면서 뜨거운 요리’ 등 추상적인 표현을 써서 주문을 일부러 알쏭달쏭하게 제시한다는 점 등이었다.
또 요리를 시작하기 전, 게스트가 사회자들과 본인의 식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도 유사한 부분이다. 스타들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팬들의 인지상정이며, 그 중에서도 프라이빗한 영역에 해당하는 식성을 털어 놓는 포맷은 게스트를 팬들 앞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주문이 주관적인 만큼 맛에 대한 평가 역시 주관적이어서, 더 솜씨를 발휘한 요리사가 패배하는 경우가 예상 외로 많다는 것도 두 프로그램의 공통적인 재미 요소라 할 수 있다. 게스트의 식성을 과감히 무시하고 ‘고의로’ 별난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이 종종 나타나는 부분도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 중 하나이다.
2) 두 프로그램은 어떤 대목에서 차별성을 갖고 있는가.
우선 ‘비스트로 스맙’에는 ‘냉장고’와 달리 게스트가 식재료를 직접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그리고 비스트로 스맙에 등장하는 식재료가 평균 이상의,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반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게스트의 평소 생활 습관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재료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비스트로 스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저 정도 재료를 써서 맛이 없으면 이상한 것”이라는 점이다. 비스트로 스맙에는 일본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용 작물과 색다른 품종의 식재료가 등장하는가 하면,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트러플이나 최고급 캐비어를 자주 볼 수 있다. 조리 과정 역시 버라이어티해서 -237도 액체질소로 분자요리를 하는가 하면 얼음처럼 차가운 석판 위에서 아이스크림을 섞는 등의 묘기를 선보인다.
반면 ‘냉장고’의 경우 예외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평균적인 한국 가정에서 먹는 식재료가 주로 등장한다. 지드래곤의 냉장고 안에서 나온 커다란 트러플이나 소유진씨의 어란 정도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이런 식재료가 나오면 출연진이나 시청자들은 “일부러 사다 놓은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다. 역으로, 대부분의 재료들이 썩어 가는 가운데 쓸만한 식재료를 찾기 위해 셰프들이 ‘사투’를 벌이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조리 과정에서도 엄청난 장비나 기계는 나오지 않으며, 일회용 비닐팩을 짤주머니로 쓰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이 주로 보인다.
비스트로 스맙에서는 차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 국민 아이돌이, 희귀한 식재료를 고르고 골라 색다른 조리법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를 내놓는다. 가끔 ‘삑사리’가 날 때도 있으나 스맙이 만들어준 요리라는 사실만으로 기본 점수는 따고 들어간다. 반면 ‘냉장고’에서 요리하는 이들은 전문 셰프지만 한정된 재료에 다소 열악한 조리 환경, 게다가 분량을 뽑아내야 하는 예능인으로서의 역할까지 강요받는다. 아무리 큰 실수를 하더라도 스맙의 아마추어 셰프들은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반면, ‘냉장고’의 프로 셰프들은 별점 하나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심한 경우 퇴출의 위협을 받기도 하는 불안한 위치에 있다.
3) ‘냉장고’가 비스트로 스맙으로부터 참고해야 할 사항
1주년이 지나고 60화를 넘긴 ‘냉장고를 부탁해’를 이끌어 오면서 제작진은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을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지나친 고급 식재료는 오히려 프로그램의 현실성을 떨어뜨린다’는 부분이다. 가령 소유진, 지드래곤, 양희은, 이하늬 등 스타들의 냉장고에서 나온 트러플(혹은 트러플 가공품)은 그 맛이 어떤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돈많은 연예인들의 자기 과시라는 비난이 오히려 많았다.
반대로 사유리와 강남, 혹은 최근에 출연한 박나래의 경우처럼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독신자의 냉장고에서 쓸만한 재료를 찾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모습은 시청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 중식 대가 이연복 셰프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솜씨를 뽐내기보다는 출연자 혹은 시청자들이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레시피들을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
인기 스타가 아닌 전문 셰프가 요리를 맡는다는 점은 비스트로 스맙과 차별되는 ‘냉장고’ 만의 강점이다. 하긴 애초에 프로 버금가는 솜씨를 제한된 시간에 발휘할 수 있는 연예인이 드문데다가, 이들이 ‘냉장고’에 지속적으로 출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스타의 역할과 셰프의 역할을 확실히 분리한 것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냉장고’가 가장 전략을 잘 짠 부분이라고 할 만 하다.
십여 년이 넘게 방영중인 ‘비스트로 스맙’에서 ‘냉장고’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또 한 가지는 프로그램의 진정한 주인공이 요리를 하는 연예인이나 셰프가 아니라 음식을 먹어주는 게스트라는 점이다. 물론 두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종종 쩔쩔 매는 모습을 보이거나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는 등의 디테일들은 시청자에게 잔재미를 준다. 그러나 완성된 요리를 먹는 순간만큼은 게스트와 시청자가 혼연일체가 된다. ‘냉장고’에서 어느 셰프가 우승할지 퀴즈를 내는 것도 그만큼 감정이입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스트로 스맙은 일본이 거품 경제의 호황을 누리던 시절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냉장고’는 반대로 B급 구르메가 유행하고 있는 불황기에 저렴하면서 색다른 맛을 찾는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면이 크다. ‘냉장고’가 비스트로 스맙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국민 쿡방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제시한 요소들을 성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