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에게 도시락은 어떤 의미일까?
학창시절의 추억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클리셰 하나가 도시락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가 밥 밑에 깔아주신 달걀 프라이라던가 친구들과 난로에서 도시락을 데워 먹었다던가 하는 추억이 없다. 이미 보온도시락이 보편화된 시절이었으니 난로에 데워먹는 낭만도 없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대체로 햄이나 치즈 아니면 볶은 김치 정도로 두 종류를 넘는 일이 드물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의 아기자기한 도시락이 부러워 한번은 항의를 했더니만 "반찬 여러개 해줘봤자 먹지도 않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야채라곤 질색하던 지독한 편식쟁이였던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하나 있긴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도시락을 깜빡 잊고 등교한 적이 있었는데 유난히 나를 예뻐하셨던 담임샘은 다른 아이들의 밥과 반찬을 조금씩 덜어 주셨다. 그날 내가 맛본 도시락은 최고의 성찬이었다. 아주 나중에 그때 일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육아 관련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일본의 한 어린이집 풍경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일제히 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에 도시락을 벌여 놓고 뷔페식으로 먹는다. 반찬이 초라해 주눅드는 아이도 없고, 편식하던 아이들도 여러 가지 맛을 보면서 골고루 먹는 식습관을 길러준다고 한다. 지금이야 급식세대이니 해당사항이 없지만, 보면서 정말 국내 도입이 시급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시락의 매력에 눈을 뜬 것도 일본을 방문하고 나서이다. 그 전에 '춤추는 대수사선'이란 영화에서 엘리트 경찰들은 3천엔짜리 고급 도시락을 먹고 관할서 형사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장면을 보고는 '3만원짜리 도시락엔 뭐가 들었을까...'라고 궁금해했었다. 도쿄의 편의점과 슈퍼에서 본 색색가지 도시락들은 마치 곱게 물들인 사탕과자처럼 화려한 자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일식을 아주 즐기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도시락이 뭐 도시락이지'하며 담담했었다. 게다가 식당에 느긋하게 앉아 일품 요리를 맛보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에 도시락을 굳이 사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으로 접한 고급 도시락은 의학기자 시절, 학회에 갈 때마다 점심으로 나오던 3만5000원짜리 일식 도시락이었다. 정성들여 만든 티가 나는 갖가지 때깔의 반찬들이며, 내 돈 주고는 거의 사먹을 엄두를 못내던 생선회까지 갖춘 도시락은 그야말로 일할 맛이 날 정도로 황홀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하루이틀이지, 봄 가을 학회 시즌에 주중이면 매일 비슷한 구성의 일식 도시락을 먹으니 질리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출입처를 옮길 무렵, 그 비싼 도시락을 반 이상 남기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한번은 의사 친구에게 학회 이야기를 하니 자기 남자 동기 이야기를 해줬다. 준재벌집 딸과 사귀던 동기 남자아이는 여친에게 "학회 가면 3만5000원짜리 도시락도 얻어먹고 좋다"는 말을 했더니 그녀, 눈을 반짝이며 "3만5000원짜리 도시락을 왜 못사먹어?"라고 하더란다. 그 남자 동기는 나름 순수한(!)사람이었던 것인지 고민 끝에 여친과는 안맞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헤어졌다나...왠지 춤추는 대수사선의 관할서 형사와 캐리어 경찰을 보는 듯한 그림이 그려졌다. 도시락에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사실 국물 없이 밥 못먹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상 도시락은 대중화되기 어려운 메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편의점들이 경쟁적으로 도시락을 내놓으면서 도시락의 퀄리티는 상향평준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햄버거 스테이크나 돈까스처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각종 반찬들은 부실한 학창시절 도시락의 슬픈(!) 추억을 보상해줄 만큼 맛도 모양도 훌륭하다. 가성비 좋은 도시락을 내놓은 한 원로 탤런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칭송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먹을 사람도 없고, 엄마의 손맛도 담겨있지 않은 오늘날의 편의점 도시락은 겉모양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쓸쓸해 보인다. 번거롭지만 종종 친구나 가족, 혹은 나 자신에게 정성들인 도시락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지.. 경험상 밥먹으면서 친해진 사이는 쉽게 멀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