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레나' 속 사춘기 소년의 섹슈얼리티와 그 불편함
옴니버스 영화 시리즈 ‘뉴욕 스토리 중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인생수업‘에는 예술을 부르짖는 늙다리 화가와 그의 젊은 여제자 이야기가 나온다.
둘의 대화는 자꾸만 엇갈리는데, 제자는 끊임없이 그에게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를 묻지만 화가는 엉뚱하게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스콜세지가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는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이 핀트 안 맞는 대화는 여성이 여전히 무언가의 대상이며 객체에 머물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오래 전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영화 ‘말레나’를 봤을 때 느꼈던 찜찜함도 이와 비슷했던 듯 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레나토를 비롯한 마을 소년들은 돋보기를 비춰 개미를 태워 죽이며 재미있어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동시에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저지르는 죄를 묘하게 희석시키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영문도 모른 채 태워져 죽는 개미는 고통스럽지만 아이들은 그 고통을 알지 못하기에, 한 마디로 철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죄는 유야무야 넘어간다.
말레나의 삶을 짓밟은 이들이 세월이 지난 후, 약간의 죄책감만 가지고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장난치던 아이들과 왠지 비슷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어쨌든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사춘기 소년들의 음탕한 상상이 되고 있던 말레나. 전장에 끌려간 남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성인 남자들은 대놓고 그녀의 몸을 노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을 잃은 말레나의 인생은 조금씩 망가져가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말 그대로 바닥까지 떨어진 존재가 되고 만다.
주인공인 레나토는 점점 잔악해지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순수한 마음으로 말레나를 지켜보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소년들이 그녀를 놓고 음담패설을 할 때 그는 말레나가 즐겨 듣던 음반을 사 놓고 남몰래 동경하는 마음을 키운다.
그러나 레나토 역시 성장기를 거치면서 말레나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그녀가 마을 남자들에 의해 짓밟히는데도 그는 침묵을 지킨다.
또 숨어서 몰래 말레나를 지켜보는 레나토의 시선은 흔히 말하는 짝사랑의 가슴앓이보다는 변태적이고 끈적이는 관음증에 가깝다.
어린 소년에 불과했기에 사랑하는 여인을 구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레나토의 침묵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시대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에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성적인 상상으로 가득한 레나토를 보면 그런 변명은 위선으로 보인다.
결국 아들이 소위 중2병으로 깽판을 놓자 레나토의 아버지는 그를 ‘창녀’ 말레나에게 데려다 준다. 그렇게 소년의 판타지는 실제상황이 된다.
결국 레나토는 상상만 하던 말레나와의 정사를 이루고 나서야 성장하고, 좀 더 나이가 들어 예쁜 여자친구의 손을 잡은 채 말레나의 남편에게 그녀의 행방을 알린다.
어쨌거나 그녀의 삶이 더 망가지는 것만은 막은 셈이지만 시기가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짓밟히고 만신창이가 된 말레나는 ‘남편’이 돌아오고 나서야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만약 레나토가 순수하게 한 인간으로 말레나를 대할 줄 아는 방법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과 섹슈얼리티를 분리할 줄 모르는 감독은 주인공에게 이런 나레이션을 시킨다.
“나는 그 후로 많은 여자를 만났다. 그녀들은 내 품에 안겨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잊을 수 없는 여인은 말레나 뿐이다...”
아마 살아있다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돼 있을 레나토를 만날 일이 있다면 나는 꼭 그 말을 해주고 싶다.
“그 입 다물라! 너도 공범이다”
*뱀발: 주연을 맡은 모니카 벨루치는 실제로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 출신이고, 어린 시절부터 남자들의 시선에 노이로제가 생겼다고 한다. 그녀가 '여신' 이미지를 벗고자 '돌이킬 수 없는' 등의 영화에 출연한 이유가 조금 이해되기도...(근데 여신이랑 살면서 바람피는 뱅상이란 인간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