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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어머니다우려면..

일드 '마더'를 보고 느낀 것들

by Sejin J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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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내 가슴을 너무도 먹먹하게 만들었던 일드 '마더'.

학대당하는 자신의 제자를 유괴(?)해 엄마가 되는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고아로 살다 입양된 과거 탓인지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주인공 나오(마츠유키 야스코)는

훗카이도의 무로란에서 철새를 연구하다 생계 때문에 적성에도 맞지 않는 교사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반에서 평범치 않은 언행의 레나(아시다 마나)를 보게 되고 아이가

친모와 동거남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알게 되자 무언가에 이끌리듯 레나를 데리고 도망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녀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아서, 나오는 중간에 여비를 잃어버리는가 하면

고된 청소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파파라치 같은 남자한테 협박당하는 건 덤...

이 드라마는 나오 이외에도 나오의 양어머니와 친모, 아이를 중절하려는 나오의 동생 등

다양한 형태의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회를 할애해 딸을 학대한 레나의 엄마 히토미의 이야기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화가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내용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린 나이에 결혼과 출산, 이혼을 겪은 히토미가 처음부터 막장부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들이 다 누리는 청춘의 즐거움 대신 고된 일상과 매일매일 싸워가며

그녀는 조금씩 지쳐가고...어느샌가 보물같았던 딸은 짐짝처럼 여겨진다.

바로 그때 히토미의 곁에 나타난 동거남. 막장행각은 둘의 여행에서부터 시작된다.

함께 여행을 가자는 남친에게 딸의 몫을 자기가 내겠다고 하지만 그는

"애를 데려갈 거야?"라고 반문하고, 결국 산더미 같은 과자와 함께 레나를

일주일이나 빈 집에 방치한다. 그리고 함께 살게 되면서 동거남의 레나에 대한

성적 학대가 시작되지만 히토미는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는 여자로서의 행복을

놓지 못한다. 아동학대 뉴스를 보고 미친 듯 실소하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처절하다..


오래 전 봉사활동하던 곳에서 임신한 10대 싱글맘을 본 기억이 났다.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임신중이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담배 피우면 안된다 말리는 사람조차 없는 상황이 바로 한국의 싱글맘이 처한 현실이다.

히토미의 막장부모화와 함께 그려지는 나오의 뼈빠지는 자기 희생은

모성의 위대함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모성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를 역으로 말해주는 듯 싶다. 나오의 츠구미(레나의 새 이름)를 향한

끝없는 사랑에도 세상은 이들을 모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츠구미'는 철새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소설을 번역한 김난주씨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제목을 '티티새'로 바꿔버리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는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운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낙태, 아동학대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를 욕한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한 소녀가 얼마나 공포를 느꼈을지,

싱글맘이라는 비난에 시달리는 엄마가 어떻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지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불행히도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막장부모가 처음부터 막장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머니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세상이라면 같은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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