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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11. 2019

중국 월병은 만월, 한국 송편은 반달

우리나라에서 추석은 설과 함께 2대 명절로 불리지만, 중국 추석 중추절은 그닥 스케일이 크지 않다. 

문화대혁명 때 구습 타파라는 명목으로 전통 세시풍속을 죄다 없애버린 탓이라고 하는데...

(참고로 이 때 소실된 자료 중 하나가 황제의 만찬이라는 '만한전석'에 관한 것이다. 즉, 오늘날 중국에서 

만한전석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요리는 대충 비싼 재료 모아 놓고 흉내만 내는 셈...)


아무튼 오늘날 중국 현지에서는 중추절이 '월병 먹는 날'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중국 작가 마오우의 소설'열여섯 밤의 주방'을 읽다 염라대왕이 저승을 지키는 고양이, 

백무상에게 온갖 종류의 월병을 사다 줬다는 장면에서 나는 월병이란 음식을 처음 만났을 당시를 떠올렸다. 


펄벅의 소설 '대지'에는 종종 "이거 고증오류 아닌가?" 싶은 대목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오란이 설을 맞아 월병을 '쌀가루로' 만드는 모습이다. 

중추절 이외에는 월병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안 나는 조금 의아했었다. 

지역에 따라, 그리고 문화대혁명 전에는 명절과 관계없이 자주 먹었다고 쳐도 쌀가루 버전 

월병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는데...(이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다...아무래도 고증오류쪽에 무게가..)


오래 전 나름 네임드라는 중국집을 방문했을 때 맛본 인생 첫번째 월병은 그닥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기름진 중국 음식을 먹은 직후라 다소 묵직한 느낌의 과자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실제 중국인들도 월병을 후식으로 먹기보다는 차에 곁들이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알고 있다. 


'진짜배기' 월병을 만나게 된 것은 자유기고가로 주간한국에서 음식 칼럼을 연재를 할 당시이다.

명동에서 지금도 유명한 월병집 '도향촌'을 방문한 나는 사진기자분과 함께 월병 만드는 과정을 

기다리다 시그니처 메뉴라는 '십경월병'과 다른 메뉴 두세 가지 과자를 시식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팥앙금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푸석하지도, 너무 달지도 않은 앙금 맛은 일품이었다.

십경월병은 각종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풍부하게 들어간 것이 마치 고급스러운 케이크를

연상시키며, 차와 함께 먹으면 찰떡궁합이다. 


가게 사장님은 수십년 전 화교로부터 제조 비법을 전수받았고, 지금은 중국인들도 그곳만 찾을만큼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급 가게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과자들이 맛있지만 특히 코코넛 등이 들어가

독특한 풍미를 내는 '광동오인'을 가장 좋아한다. 튀긴 국수를 강정처럼 굳힌 모양의 사치마 역시 

추천 메뉴 중 하나다. (글고보니 열여섯 밤의 주방에도 사치마가 등장한다...)


월병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이 몽골 지배층의 감시를 피해 월병 속에 비밀 정보를 담은 쪽지를 주고 받았다는 이야기다.  

혹시 미국식 중국식당에만 있다는 '포춘쿠키'가 바로 이 전설에서 착안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보름달의 모양을 본떠 만든 월병은 달의 여신 항아에게 제사를 올릴 때 바친 음식이기도 하다. 


중국 현지에 가면 과자로 먹는 월병 외에도 각종 고기나 야채 소, 소금에 절인 오리알 등 그야말로

온갖 재료가 들어간 월병을 만날 수 있다. 오리알 월병은 처음엔 짠맛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지만 

단짠의 조화가 훌륭해 마니아들이 많다. 모험심이 조금 강한 사람이라면 두리안 월병도 추천한다. 

중추절 시즌이 되면 하겐다즈에서는 한정판 아이스크림 월병을 내놓기도 한다고....

최근에는 중국에 부자들이 많아져서인지 월병은 뇌물의 상징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월병 속 오만원짜리....)


중국식 월병이 만월 모양인 데 비해 우리나라의 송편은 반달을 닮았다. 

그 이유는 삼국시대의 고사에서 비롯됐는데, 의자왕이 다스리던 백제 궁궐에 어느날 땅속에서

나타난 거북이 등에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점술가의 말로는 "백제는 서서히 기우는 운명이요, 신라는 차차 커져서 만월이 될 것"이라고..

어째 신라의 삼국통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인 듯도 싶지만, 

지금 당장의 만월보다 점점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삶에 더 희망이 있다는 데는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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