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jin Jeung Sep 19. 2019

4년째 훠궈 짝사랑 중...ㅠㅠ

사람에게는 누구나 언제 먹어도 맛있고, 먹다 보면 세상 시름을 죄다 잊게 만드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내 경우 하나로 도저히 타협을 볼 수 없다보니 둘로 좁혔는데 바로 초밥과 훠궈이다. 

다만, 초밥의 경우 제대로 된 곳에서 먹지 않으면 오히려 안 먹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게 문제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허하고 위안이 필요할 때 비교적 자주 찾게 되는 음식은 훠궈일 때가 많다. 

이 대목에서 또 한가지 암초를 만나게 되는데, 훠궈는 '혼밥'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훠궈를 주문하면 대략 이런 느낌의 상이 차려진다. 이게 좀 럭셔리 버전이란 걸 감안해도 

혼자서는 도저히 먹기 힘든 스케일이다. 심지어 손님 한명은 받지 않는 가게도 꽤 있다...

내가 훠궈라는 음식을 처음 맛본 것은 2008년도, 북경에서이다. 애초에 남의 나라 음식 적응에 최적화된 나는

뭔진 모르지만 겁나 맛있다며 매우 즐거운 식사 자리를 가졌고 그날부터 훠궈는 내게 '툭하면 생각나는' 

소울푸드 중 하나가 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중국에선 이미 그때부터 1인 훠궈집이 백화점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흔했고 그땐 중국어에 자신도 없다 보니 혼자 시켜먹을 엄두가 안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훠궈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된 걸 알고 뒤늦게 그리워지게 된거다. ㅠㅠ

간신히 성신여대 부근의 한 양꼬치집에서 훠궈를 함께 판다는 걸 알았지만 3만원 가까운 가격 때문에

혼자서 간 적은 없고 친한 동생 혹은 동네 친구를 항상 대동했다. 일종의 훠궈 팸(?)을 형성한 셈.


중국에서 살다 오거나 장기간 여행하다 온 사람들 상당수가 한국 오면 그리워지는 메뉴로 꼽는 음식이

바로 훠궈와 양꼬치다. 그리고 둘 다 양념이 강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쓰촨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화자오와 마자오는 한국식 칼칼한 매운맛과 다른 '얼얼한' 맛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이 맛을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혀를 자극하는 맛이 중독을 부르는 게 특징이다. 

한국에서 전도(?)를 펼친 결과 당시 생소했던 마라의 세계에 내가 직접 '머리를 올려 준' 친구가 여럿이다. 

그 중 인상에 남는 반응은 "언니, 이거 술마시고 동시에 해장하는 거 같애"라고 한 Y양..

또 중국 살다온 친구에게서 훠궈소스를 선물받고는 이태원에서 양고기를 공수해 파티를 벌인 적도 있다.

1kg에 가까웠던 양고기는 두 여자의 엄청난 식욕에 그날 운명을 달리했다..


훠궈의 또 다른 매력은 좋아하는 재료를 골라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두부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말린 두부를 훠궈에 넣어 먹는 맛을 알고부터는 

무한리필집에서 추가로 가져다 먹을 정도로 팬이 됐다. 음식 양을 불리기 위한 기만이라며

싫어했던 당면도 훠궈 국물에 풍덩~ 하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식감을 자랑한다. 

또한 매운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백탕과 홍탕을 각자 먹으면 되니 

이처럼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심이 깃든 메뉴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4년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나 달달한 연애를 시작하면서 고난도 함께 찾아왔다. 

초딩입맛 남편에게 혀가 얼얼해지는 마라양념은 영 맞지 않았던 것이다. 

백탕을 먹으라며 몇 번이나 낚시를 시도했으나 연애 때도 남편은 음식에 대한 고집만큼은 꺾지 않았다.  

연인과 함께 혼자서 못 먹는 훠궈를 마음껏 먹으러 다니려던 나의 빅 피처는 이렇게 산산조각났다..

(나중에 들은 얘기론 회식때 훠궈를 먹어보긴 했는데 사람 먹을게 아니라나...--;;;;)

하지만 나의 훠궈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지라 또 다시 팸을 모집하거나, 혹은 그나마 가까운 

신도림에 있는 훠궈하오를 찾아간다. 이곳에서는 혼밥이 가능...

(명동 하이디라오가 오리지널에 가깝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가격이 좀 많이 부담된다.)


개인적으로 훠궈 재료로 가장 선호하는 것을 꼽자면 기본 양고기에 배추, 청경채, 중국 녹두당면,

두부피를 빼놓지 않는다. 목이버섯과 새우도 자주 선택하지만 어묵, 소시지는 거의 먹는 일이 없다.

입맛에 따라 다르겠지만 홍탕은 해산물과 그닥 궁합이 좋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선지나 천엽이..

칭따오나 혹은 조금 센 중국술을 곁들여 뜨끈한 훠궈를 먹다 보면 1~2시간 동안 매우 행복해진다.

여기에 적당히 추운 날씨, 대화가 통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행복은 몇 배로 불어난다.

물론 여름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는 훠궈 맛도 별미이긴 하지만...  

혼밥의 외로움과 번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언젠가 남편을 낚으리라 벼르고 있지만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ㅠㅠ 나의 훠궈 짝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작가의 이전글 중국 월병은 만월, 한국 송편은 반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