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3년이면 권태기가 온다.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는 일

by 최선

2023년에 첫 발령을 받고, 매해 정말 다양한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를 만나며 3년이 지났다. 그 순간들은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지만, 4년 차 교사라는 타이틀을 코앞에 둔 나는 슬슬 권태를 느낀다. 이 권태감과 무력감은 직업에 대한 회의라기보다는 이제 어느덧 내가 학교라는 수레바퀴의 완전한 부속품이 되었다고 느끼는 데에서 기인한다. 매년 학교는 시리도록 푸른 아이들을 새롭게 맞이하지만, 나는 그 도돌이표 속에 점차 더 굳건히 갇히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애들 인생에 조금도 영향을 미칠 수 없어요. 잘되고 망하고는 아이들이 직접 결정하는 거죠. 설령 뼈저리게 실패한다고 한들 교사는 그 실패의 기회를 빼앗을 자격이 없어요."


내가 최근 한 선생님께 들은 조언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내 3년간의 교직생활의 지침과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에 놓인 견해였다. 내가 교사가 되어 가장 행복하고 벅차고 또 너무 소중해서 유리조각 다루듯 했던 이유는 바로 이 하찮은 나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인생 전반을 흔들 수도 있다는 기대 혹은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고3 담임을 2년간 맡으면서 나는 착잡하게도 실감했다. 이미 성인의 언저리에 와 있는 아이들에게, 십 대의 9부 능선을 지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건 오만이라고.


실제로 그 선생님의 말은 어느 정도 합당한 말이었다. 나는 늘 아이들이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그리고 조금이라도 엇나갈까 봐 전전긍긍했다. 일례로 진로가 급하게 바뀌어 3학년 1학기 생기부 마감일에 창체 기록을 수정해 달라고 찾아온 학부모가 있었다. 그 학부모는 의료보건 계열을 희망하는 학생의 생기부를 3학년 1학기 마감 직전 교육 계열로 수정해 달라고 했다. 물론 내가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자율이나 진로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부탁은 내게 매우 힘든 일이었다. 생기부는 학생이 실제 활동한 내용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공문서임과 동시에 학생의 대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학생과 상의하여 급하게 활동지를 받고 생기부에 활동 내용을 조금이나마 기재해 주기로 했다. 그때 내 심정은 참담했다. 교사로서의 권리이자 권위가 실추되는 느낌이었고, 또 나는 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거치는 문지기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 학생은 지원한 교대에 모두 합격했다. 생기부는 비록 교육에 관련된 말이 거의 없었지만, 성적이 우수했다. 그래서 3년 내내 교육을 희망한 성적이 낮은 학생보다 좋은 입시 성적을 내었다. 그때 나는 학생부 종합 전형에 대해 참 알 수 없는 무력감과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 어렵다. 도자기에 비유하자면 이미 형태를 완성하고 건조를 기다리는 상태였다. 그 작품에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손자국에 불과했다. 어쩌면 예쁜 문양이 되거나 혹은 작은 흠이 될. 내가 교사로서 하는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학생을 위한 일이지만, 그 어떤 것도 학생의 삶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묘하게 짜릿했던 것은 아마 내가 그 아이의 인생을 망칠 수도 없다는 책임감에서의 도피와 아이에게 실패의 경험도 중요하다는 교육의 중심을 관통하는 의미 덕분이었다.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 쓰고 힘든 일이다. 너무나 절망적이고 끔찍하기도 하다. 다만 그 실패로 인해 우리는 인생이 실전임을 배우고,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교사로서 조금 느려졌다. 예전처럼 아이의 인생을 바꾸겠다는 확신도, 말 한마디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기대도 없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게 되었다. 생기부를 고치고, 진로를 설계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이 아이의 삶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것은 다만 그 아이가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


이 권태는 열정이 식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라는 구조를 너무 잘 이해하게 된 결과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을 반복하며 나는 어느새 이 시스템의 매끄러운 부속품이 되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새롭고 매번 다른 얼굴로 교실에 들어오지만, 나는 점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선택을 한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교사는 더 이상 영웅도 구원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교실에 선다.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 인생을 함부로 단정 짓지 않기 위해서다. 기록이 평가가 되는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가능한 한 덜 왜곡된 언어로 아이를 남기기 위해서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교사란, 누군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미래 앞에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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