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왔다.

문장 하나를 고치면서 잃어버린 것

by 최선

"선생님, 음료라도 사 올까 했지만... 그런 거 받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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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교육학개론 책의 가장 첫 챕터에는 교사의 직업관에 대한 여러 관점이 나온다. 온 힘을 다해 근로하는 노동자, 학생을 사랑하며 헌신하는 성직자, 혹은 고유의 기술을 가진 전문직관이 그 예이다. 그중 교육학개론에서는 교사를 전문직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노동이나 사랑이나 헌신을 넘어 전문적인 역량으로 학생을 대하는 직업이라는 소명의식을 지니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교직 사회에서 내가 마주하는 교사는 서비스직 노동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주로 한다.


그날은 생활기록부 마감일이었다.
수시 전형과 더불어 수능을 앞두고 있었기에 교무실 공기는 유난히 가빴고, 키보드 소리와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누구 하나 여유롭게 앉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마감이라는 단어는 학교에서 늘 그렇듯 사람을 조금 예민하게 만든다.


그때였다. 사전에 약속된 일정은 아니었다. 원하는 진로와 성적의 간극으로 고민하던 학생에게 필요하면 부모님께서 연락을 주셔도 좋다고 이야기한 게 전부였다. 생기부 마감 후 퇴근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 그 학생의 학부모님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하필 오늘인 이유, 생기부라는 것을.




마감 당일에 생기부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붙잡는 일이다. 학부모님의 얼굴에는 그걸 아는 사람 특유의 조급함이 있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나왔다. “선생님, 아시잖아요. 딱 한 문장이면 돼요.”


의료 보건 계열을 희망한던 아이였는데, 진로 상담 내내 마음 한편이 저렸다. 일반고에서 2등급 중반의 성적이라 메디컬 계열은 진학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의료 보건 계열을 희망해서 생기부가 이미 그쪽으로 완벽히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학부모님께서는 메디컬 계열이 어렵다면 교대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직접 해당 활동에 참여한 것이라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다만 학부모님의 요구는 담임이 적을 수 있는 생기부 내용에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린 내 모습이 스치듯 떠올랐다. 나도 의대를 희망했었고, 아쉬웠던 성적과 여러 한계로 인해 사범대로 진로를 변경했던 일. 아이가 느꼈을 혼란과 갈등, 부모님의 안타까운 초조함이 모두 피부로 스미는 듯했다.


생기부는 여러 번 검토했고, 이미 저장을 눌렀고, 이제는 생기부 담당 선생님의 대입 전형 자료 생성만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학부모님은 프린트된 종이를 꺼내며 설명을 이어갔다. "요즘 교대는 생기부보다는 성적이 우선이라고 해서요. 아이 성향을 고려했을 때 그렇게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눈 한번 딱 감고 바꿔주시면 돼요."


목소리는 낮았고, 태도는 예의 바랐다.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했다. 이건 항의도, 민원도 아니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설명을 시작했다. 생활기록부는 추천서가 아니라는 것, 미화의 문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오늘은 이미 마감일이라는 사실까지. 말은 차분했지만, 내 속은 그렇지 못했다. 혹시 내가 너무 단호한 건 아닐까. 혹시 이 한 문장이 아이의 인생을 가르는 건 아닐까. 교사는 늘 이런 질문 앞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알고 있었다. 문장을 바꾸는 일은 쉽지만, 시간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문장 하나에는 한 해의 수업 태도, 과제, 발표, 보이지 않던 순간들이 이미 담겨 있었다. 더 좋게 쓸 수도 있었고, 다른 표현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의 수정은 기록을 보완하는 일이 아니라, 기록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연락했다. 학부모님과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전하고,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마감일이라는 것, 이미 입력이 끝났다는 것, 그리고 이 문장을 바꾸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함께 이야기했다. 아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간을 주시면 다시 다 낼게요.”


아이의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성실한 아이였고, 차분하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학생이었다. 결국 나는 활동 산출물을 다시 받기로 했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시간을, 아주 짧게나마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학부모님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이 아이 인생 살리시는 거예요. 이런 부탁하면서 음료라도 사 올까 했지만... 그런 거 받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나는 알고 있다. 그 말이 나에 대한 엄포나 경계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체면을 내려놓고 부탁을 하러 온 학부모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권위라는 것을.


부랴부랴 문장을 고쳤다. 기록의 방향을 바꾸지 않되, 기록의 근거를 다시 세우는 일.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손끝은 생각보다 더 떨렸다. 이후에 아이는 활동 산출물을 다시 제출했다. 늦었지만 성의 있게 정리된 자료였다.


문장을 고치기로 결정하는 순간, 마음 한편이 무너졌다.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혼란스러웠고, 교사로서의 내 위치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마감 당일, 학부모의 방문 그리고 결국 수정된 생활기록부. 이 모든 과정이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마치 원칙을 지키지 못한 사람, 요구 앞에서 한 발 물러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교사의 권위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사는 기록하는 사람이고, 판단하는 사람이며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는데 그날의 나는 누군가의 간절함 앞에서 그 기준을 다시 열어본 사람이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해서 자문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 쉽게 흔들린 건 아닐까, 이 선택이 다음 요구를 부르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날 이후 한동안은 괴로웠다. 문장을 고친 일보다도, 그 문장을 고친 교사로서의 나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였다. 교사로서 지켜야 할 선과 사람으로서 외면하기 어려운 마음 사이에서 나는 분명히 어정쩡한 자리에 서 있었다.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렇다고 후회로만 밀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 아이는 수시 원서 6개 중 3개를 교대를 써냈고, 3개 모두 예비 번호를 받은 후 합격했다. 생기부에 교육이라는 키워드가 몇 개 없었는데도 그러했다. 내 권위는 조금 더러워지고 낮은 곳으로 가라앉았지만, 아이의 대입은 성공의 결과를 맞이했다. 아직도 양면적인 마음이 든다. 그때 나를 위해, 그리고 교사를 위해 거절했어야 했을까. 혹은 그래도 대입에 성공했으니 된 것일까. 결국 아이가 합격한 것은 내 덕분이 아니라 우수한 성적 덕분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죄책감이 든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생활기록부 작성 과정에서 원칙과 상황 판단 사이에서 흔들린 경험을 통해 교사로서의 역할과 기준을 성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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