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도 별로 안 행복해 보이시는 걸 보고 회사생활을 포기하다
나의 첫 회사생활은 여러모로 절망적인 나날들이었다.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졌었다. 지금 돌아보면 첫 회사생활 실패 이후 자신감을 잃고 살길을 찾아 헤맸던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유익한 시간들이었고 지금까지도 내 초심을 지켜주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었다. 그때 이후로 경제 활동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전에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걸 성공이라고 생각했다면 회사생활에 실패한 이후로는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찾아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한 다른 대학 동기들과 달리 (지금 대부분 의사 아니면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졸업하고 뭐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없었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니 전공도 대충 전공 필수과목이 가장 적은 걸로 선택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는 명문대 입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했던 덕택에 좋은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고 대학 학점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류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뉴욕에 위치한 한 대기업에서 나를 뽑아줘서 취업 하게 되었다.
멋진 뉴요커로써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암담했다. 내 일은 지능도 전문성도 필요 없는 단순 업무였다. 좋은 대학교 출신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에 중고등 학생도 할 수 있는 단순 업무가 내 직업이란 게 자존심 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월급도 적었다. 어느 정도로 적었냐면 모든 게 비싼 뉴욕에서 밥도 먹지 않고 가만히 방에서 숨만 쉬는 값이 내가 벌어오는 돈보다 더드는 격이었다. 내 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니 절망스러웠다. 매일 반복되는 단순 업무에 내 안의 불꽃이 조금씩 꺼져 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께 하소연을 하니 직장생활이란 게 원래 그런 거라 신다. (참고로 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한 번도 안 해보신 자영업이다.) 일이 재미없어도 근무시간 동안은 회사가 내 시간을 돈을 주고 산 것이니 회사에 충성을 다해야 하고 그렇게 참고 일하다 보면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 있을 거라고 하셨다. 희망적이진 않았지만 맞는 말 같았다. 좀 올라가면 내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높은 직급에 있는 상사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목표를 높게 잡아 사장님을 관찰하며 내가 회사에서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의 삶을 그려보려 했다. 내가 회사에 뼈를 묻어도 사장까지 못 갈 것 같았지만. 회사라는 사다리 위에 높이 올라가면 일이 재밌을지, 더 행복할지 알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내 책상은 사장실 바로 앞이어서 사장님이 매일 출퇴근하고 일하시는걸 유리를 통해 관찰할 수 있었다. 사장님을 매일 관찰한 결과 딱히 즐거워 보이시 지도 부유해 보이시 지도 않았다. 업무시간엔 지루해 보이셨고 퇴근시간에 가장 즐거워 보이셨다. 취미는 가끔씩 맛집에 가는 거라고 하셨다. 흠, 사장이 되어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네? 나는 이 회사에서 행복할 수 없는 건가? 일류기업이 아니어서 그런가. 어차피 일류기업은 상상해 볼 필요도 없었던 것이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일류 기업 문턱에 갈 가능성 자체가 없었다. 내 업무는 지능도 능력도 필요하지 않은 단순 업무였지만 나는 그나마도 잘 못 했기 때문이다. 나의 무능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일이 재미없으니 대충 했고 근무 태도도 좋지 않았고 자주 실수해서 내 사수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더 잘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취업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업무능력을 개선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공식 경고를 받았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직장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그만두게 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회사들도 별반 차이가 없었고 이직해도 내가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란 기대는 헛된 희망같아 보였다.
남들 다하는 회사생활을 잘하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고 다른 별다른 대안도 없단 건 내 20 + n 년 남짓한 삶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느낀 절박함이었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보편적인 성공이 나에게는 옵션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먹고살 길들을 찾아 생각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대졸자로써 직종을 다니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걸 못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했다. 나는 프리랜서로 일할 이렇다 할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회사생활은 소질이 없는 걸로 판명이 났으니 남은 것은 자영업인데, 자영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니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국어도 독학했다. 신문을 보기 시작했고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대학원에도 지원했다. 매일매일 돈을 벌 수 있는 생산성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 뭔가를 했다.
6년 후 지금 최근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가끔씩 어떻게 그렇게 일찍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고 투자를 시작했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민망하다. 사실 내가 비범해서가 절대 아니고 회사생활에 실패해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시작한 거라서.. 그래도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회사생활에 소질이 없다고 해서 모든 경제활동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니란 것이다. 그때 당시엔 절망했고 숨고 싶었지만 오히려 내가 못하는걸 일찌감치 알게 돼서 자만감을 버리고 다른 걸 시작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