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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ug 06. 2020

8. 픽업아티스트의 타겟이 됐다.

<데이팅 프로젝트> 매거진은 건어물녀였던 제가 적극적으로 연애하기 위해 노력했던 3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과 느낀 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몰랐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는 픽업아티스트도 있었다. 앤드류라는 잘생긴 한국계 미국인 청년이었는데 만나자마자 나를 허물없이 대하고 장난기가 많은 모습에 끌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앤드류가 나를 혹하게 한 수법들은 픽업아티스트들이 매뉴얼로 만들어 놓은 수법들이었다. 앤드류가 한 행동 중에 픽업 매뉴얼에 있는 수법들을 따로 표시해 놓았다. 



픽업아티스트의 데이트 수법


평소와 달리 앤드류와의 첫 데이트에 내가 많이 늦었다. 도착해 보니 만나기로 한 장소 앞에서 어떤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바람맞는 줄 알았네, 들어가자" 라며 예전부터 친했던 친구처럼 행동했다. (수법 1: 친근하게 행동해서 타깃이 픽업아티스트를 경계하지 않도록 한다.) 내가 테이블에 앉자 테이블 맞은 면에 앉지 않고 옆면에 앉았다. (수법 2: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 그것도 옆자리에 앉아서 타깃이 심적으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는 내 손을 덥석 쥐고 "너는 얼굴은 예쁜데 손이 진짜 크다. 남자 손 같아, "라고 했다. (수법 3: 타깃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분명히 하되 타깃의 외모를 은근히 공격한다. 평소에 남자들에게 받는 칭찬에 익숙해진 타깃은 의외의 행동에 놀랄 것이고 자신의 매력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매력 있단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픽업아티스트의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앤드류는 예전부터 알았던 친구같이 행동해서 편하면서도 상투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 신비로웠다. 그는 친구와 놀러 나갔다가 친구의 친구의 일행으로 만난 거라 서로 연결고리가 거의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만났지만 첫 데이트 때 우리는 서로의 직업조차 묻지 않고 대신 우리가 간 일식집에서 다 먹으면 공짜인 대왕 카레를 시켜야 할지 말지 함께 고민했고, 일식집 메뉴였던 우랑과 우신(소 생식기)을 시키야 할지 말지 실랑이하며 실없는 데이트를 했지만 즐거웠다. (수법 4: 그가 소 생식기 음식을 이야기하며 장난을 쳤던 건 픽업아티스트들이 장난스레 성적인 것들을 언급해서 타깃이 성적인 연상을 하게 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그는 또 첫 데이트 때 내게 우리가 결혼한다면 아이를 몇 명 낳고 싶은지 물어봤다. (수법 5: 타깃에게 픽업아티스트와 장기적인 미래를 연상하게 하라. 타깃이 픽업아티스트를 덜 경계할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글쎄.. 10명?"이라고 답했다. 헤어지면서 그가 키스하려고 몸을 기울였지만 나는 피했다. 그랬더니 "그럼 볼에다가만 해도 돼?"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더니 입술에 뽀뽀하고 도망갔다. 그날 밤 "어제 잘 도착했어? 잘 들어갈 수 있을지 잠시 걱정됐지만 네 남자 손을 떠올리고는 걱정을 그만뒀어"라는 문자가 왔다. 



픽업아티스트의 연락 수법


나는 그의 허물없음에 매력을 느꼈고 와일드함에 섹시함을 느꼈다. 빨리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이전에 계획한 멕시코 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그는 나에게 멕시코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더니, 보내준 다음엔 답이 없었다. (수법 6: 타깃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 다음 답장을 아주 늦게 하라. 보통 사진으로 칭찬만 받았을 타깃이 자신의 외모에 문제가 있는지 걱정하게 만들어라. 픽업 아티스트의 관심과 애정을 더 갈구할 것이다.) 나는 그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났을 때는 내가 마음에 든 게 확실해 보였는데 연락이 너무 뜸했다. (수법 7: 연락을 끊지는 않되 드물게 해서 관계의 우위에 서라) 


멕시코 여행 1주, 그리고 연락 없는 1주 동안 그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처음에 그에게 가졌던 관심이 점점 흐려졌다. 나는 성미가 급하고 기다리는 것도 싫어해서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은 별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면 직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애매하게 구는 그에게 관심이 떨어졌다. 그런데 2주 만에 어느 날 연락해서는 자기의 농구 시합에 나를 초대했다. 그리고 농구 시합이 끝난 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수법 8: 약속을 잡을 때 픽업아티스트의 스케줄의 중간에 타깃을 끼워 넣어서 시간적 주도권을 픽업아티스트가 가지고 있다고 타깃이 느끼게 하라) 



의심하는 습관이 나를 살렸다


나는 그의 농구 시합을 보고 그의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즐거운 분위기에 이끌려 친구들과 함께 앤드류의 집에 서 술자리를 가졌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의 집까지 따라가긴 했지만 모두 그의 친구들이었기에 그 자리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했다. (나는 평소 의심이 많다.) 술을 마시자 그 불안감은 더 커졌다. 술자리 중간에 앤드류가 자기 방에 들어가는걸 얼핏 봤는데 '중간에 들어가서 뭘 하는 거지? 왠지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을 것 같다. 성폭력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성폭력을 당하거나 불법 촬영을 당하거나... 만약 사창가에 팔려가면 어쩌지?! 한 순간 실수로 인해 죽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날개를 펴고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서 몰래 집으로 도망갔다. 



픽업아티스트가 위험한 이유


다음날 앤드류에게 먼저 말도 없이 가버려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했는데 점심을 먹자고 해서 다시 만났다. 앤드류는 진짜로 내가 마음에 든다며 자신이 지금은 HSBC 은행에서 금융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픽업에 관심이 많고 언젠간 데이트 코치로 전향할 생각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내게 물었다. 당시에 픽업이 뭔지 몰랐던 내가 "픽업이 뭔데?"라고 물으니 이성교제에 자신이 없는 남자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도록 멘털 트레이닝을 시켜주고 여자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픽업이 남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만 이 일을 하게 되면 낯선 여자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캠코더를 꺼내며 캠코더로 여자와 이야기하는 걸 찍어서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비디오를 바탕으로 코칭을 한다고도 했다. (내 불안했던 촉은 기우가 아니었다. 그에게 나를 몰래 찍었는지 물었지만 아니라고 했다. (찍을만한 일도 없었지만) 미심쩍어서 그에게 "만약 찍었다면 경찰서 가고 싶지 않으면 지워라. 이건 경고야."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연락이 뜸한 동안 그에게 처음에 가졌던 관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 사귈 생각은 없고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이후로도 그를 몇 번 친구로 만나면서 픽업아티스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픽업아티스트의 진면목


'이성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준다'라는 허울은 좋았지만 그것을 배우는 사람들과 가르치는 사람들은 여성을 현혹시켜서 잠자리까지 가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캠코더에 '수업 자료' 명목으로 불법 촬영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앤드류를 만나면서 관찰해 보니 여성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몇 년 전에 이미 약혼해 있었던 여자의 바람 상대였던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녀는 그의 육체만을 이용했지만 아마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것 같다. 앤드류는 자신감을 높이는 기술로 다른 남자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목을 내세워 여성에게 느끼는 앙금을 여자들을 이용하면서 풀고 있었다. 정말 못난 놈이었다. 내가 첫 만남에서 앤드류에게 매력을 느꼈던 부분들은 전부 픽업의 기술이었고 나도 그 기술에 혹했었던 하나의 타깃이었다. 아마 그의 집에 간 날 그와 잤다면, 나는 불법 촬영 피해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픽업 아티스트를 피하는 방법


연락을 미적지근하게 하는 남자는 이성으로서는 만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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