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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서평: 공교육의 문제점과 기회의 불평등

평균의 일반화, 환경의 불평등, 교육방식의 불평등

by 세준희

줄거리


<평균의 종말>에서 저자는 평균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를 비난한다. 인간은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독특해서 세상에 '평균'의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개인은 없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현재 사회에서는 어떠한 평가를 할 때 거의 항상 평균을 이용하고, 평가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평균에 맞지 않는 많은 이들이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비행기 조종석을 만들 때 조정 가능한 좌석이 아니라 평균 조종사의 몸에 맞추어서 만들어서 여성이나 키가 너무 크거나 작은 사람들은 비행기를 운전하기 힘들었다. 현대의 예로는 모두 다른 개개인의 학생에게 맞는 공부 방식을 고민하기보다 n년간의 교육과정과 n시간 짜리 시험을 치르게 한 후 학생들에게 일률적인 점수를 매기고, 학생들은 그 점수를 가지고 취업을 준비하고, 기업들은 평균을 넘는 인재들을 골라서 채용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평균에 우리를 맞추어서 항상 평균에 근접하되 조금 더 나으려고 노력한다.


평균적이지 않은 아이들은 종종 '문제아'로 분류되고, 그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상황 (예를 들어 시험을 볼 시간을 더 준다던가, 자율학습을 한다던가 하는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고, 사회에 나가서도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행동은 맥락에 따라 달라져서 보편적으로 '문제행동'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이 사람은 '이 맥락에서'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저 행동이 나오지 않으려면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맞춤형으로 교육해서 평균적 교육이 주는 불이익을 줄여야 한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원하는 시간을 들여 원하는 과목을 공부할 시간을 주고 (맞춤형 교육), 개개인에게 적합한 시간 동안 시험을 칠 수 있게 해야 하며, 자율적으로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자격증 유무로 채용 같은 결정을 짓는 것을 권장한다.





저자의 배경


저자는 ADHD를 가지고 있었으며 고등학교 때 여자 친구가 임신해서 학교를 자퇴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후 보통보다 약간 늦은 나이에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까지는 문제아에 가까웠지만 대학에서 자신에게 맞는 토론식 공부법을 찾아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대학원 입학시험인 GRE에서 고득점을 해서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하버드에서 석박사를 받고 교수가 됐다. (글의 후반부에 내가 저자에 대해 따로 조사한 것들도 포함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많이 억울해한다는 걸 지속적으로 느꼈다. 나 또한 ADHD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문제아로 낙인찍혔었고 보통의 주입식 교육이 견디기 힘들 만큼 지루해서 미국에 올 때까지 성적도 좋지 않았다. 평균의 일반화를 다시 생각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도 동의하고 저자의 억울함을 이해하긴 하지만 저자의 평균의 불완전함에 대한 비판이 너무 감정적이었고 제시한 대안은 반쪽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 서평은 제 주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가 교육학 박사여서 그런지 책의 큰 부분이 현존하는 '평균 중심'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개선방안이어서 나도 교육 부분에 중점을 맞추었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에 대한 생각 (비평)


1. 평균의 일반화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저자의 대안은 현실적이지 않다.


사람이 100명 있으면 100명에게 최적인 공부법이 전부 다르고 100명이 잘할 수 있는 것들도 모두 다르다. 100명에게 최적의 직업도 아마 100개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기관들이나 회사들은 100명의 지원자 하나하나를 모두 깊이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평균이라는 쉬운 척도로 사람들을 걸러낸다. 저자는 교육기관이나 기업들이 개개인성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원자에게 특히 유리한 방법이지 기업에게는 큰 비용이 들지만 성과는 보장되지 않은 채용방법일 것이다.


저자가 권장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맞춤형으로 공교육을 실시하는 것 또한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나도 공교육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이 모든 학생에게 맞는 공부법을 제시해 주고 그들의 재능을 발굴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모든 개개인에게 맞춤 교육을 시키는 것이 공교육의 의무라는 생각은 억지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대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는데 4년이 걸리는 사람은 4년을 쓰고, 10년이 걸리는 사람은 10년을 들여 끝마치면 이상적이겠지만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 번에 같은 교육과정을 밟는 아이들이 늘어나서 교육예산이 더 필요할 것이다. 거기다 맞춤형 교육까지 도입되려면 교육자가 더 필요하게 될 텐데 미국은 이미 공교육 예산이 너무 부족해서 선생님들이 종종 사비로 교육 재료를 구입하고 있는 상황이고, 선생님들의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파업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미 현역에 있는 교육자들도 대우를 못 받는 상황에서 교육자 수를 늘리면 미국 공교육의 현실은 더 참담해질 것이다.


기업들도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지원자의 ‘실무능력’을 알아보고 채용하면 더 적합한 인재를 뽑을 수 있지만 이런 ‘인턴십’은 기업에도 시간과 돈이 든다. 만약 모든 기업들이 인턴십으로 채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비정규직 사태같이 기업들은 이를 악용하고, 인재들은 확정된 직장 없이 인턴십만 떠돌게 될 수도 있다.


2. 자격증이 개개인성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미 자격증을 도입한 한국의 예


저자가 권장하는 자격증 중심의 사회가 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다. 시험이나 성적을 잘 받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고소득으로 이어지는 자격증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으로 그저 대체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자격증이 보편화됐지만 개인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 기회가 부여되기는 커녕 안정적이거나 고수익 직장과 연결되는 소수의 자격증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예: 공무원 시험, 경찰 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보다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가 되어서 개개인성을 죽이는 것으로는 학벌이나 성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3. 맞춤형 평가의 문제점: 교수-대학원생의 예


맞춤형 교육은 예산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있다. 만약 모두가 맞춤 교육을 받는다면 낙제/통과로 점수를 매길 것인가 (같은 자격증이나 수업을 수료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성적으로 점수를 매길 것인가 (누가 그들의 성적을 결정할 것인가? 맞춤형 교육에는 불가피하게 여러 명의 교육 제공자들이 필요할 텐데 그들은 평가에 있어서 공정한가? 너무 주관적이지는 않을까?) 같은 문제들이 있다. 평균을 이용한 교육도 훌륭하다고는 하긴 힘들지만 저자도 책에서 자신의 대안이 초래할 문제들을 깊이 고려하지 않아서 평균 교육보다 나은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보편적인 석박사생과 지도교수의 관계는 작가가 말하는 '맞춤 교육'의 예이지만 주관적인 기준이다 보니 교수에게 너무 큰 권력이 있어서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비리가 생겨나고, 우수인재가 인정받지 못하는 등 이 시스템에도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있다.





공교육의 역할, 성공의 척도, 개개인성을 더 키워주려면


공교육의 역할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평균의 일반화를 비판하면서도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나 좋은 학교에 가는 것과 같은 너무도 일반화된 기준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것이 참 모순적이라고 느꼈다. 먼저, 공교육의 역할과 의무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공교육이 '일률적인 성공을 위한 도구' 보다는 '무엇을 선택하던 각자의 성공을 개척할 수 있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다. 성공의 척도의 일반화부터 버렸으면 좋겠다.


지금의 공교육은 직업군에 상관없이 필요한 읽고 쓰는 언어능력이나 단순한 산수 같은 기본적인 능력들을 키워주는 도구로써 가장 유용한 것 같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우는 것들 중에서 실제로 사회에서 쓰는 지식은 많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방대한 교과과목들을 배우느라 학생들이 개개인의 능력을 탐구하고 발전시킬 시간이 없다. 스스로를 탐구하고 여러 분야들을 접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특히 한국의 수능은 너무 많은 과목을 다루어서 학생들은 그 많은 과목들을 전부 공부해야 하니 (사교육 시간을 포함한) 너무 많은 시간을 유용하지 않은 지식을 쌓는데 할애한다. 스스로를 탐구할 시간이 없었던 학생들은 끝내 사회가 '좋은 직업'이라고 정해준 길로 가게 되는 것 같다.



개개인성을 키우려면 스스로를 탐구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모두의 '개개인성'을 발전시키려면 모두에게 스스로를 탐구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교과목이나 수능 과목을 줄이거나, 모든 과목을 듣기보다는 몇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미국처럼 독해, 어휘, 산수 이런 기본적인 능력들만 평가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의 재능을 발굴할 수 있는 시간 주면 좋겠다. 자유시간이 아니라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해서 '같은 주제로 책 5권 읽기' 같은 수업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든 학생이 각기 다른 주제를 선택할 수 있되, 자신의 관심사에 관한 책을 5권 읽고 얻은 심도 있는 지식을 서로에게 발표하고 토론한다면 자신의 관심사도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다른 학생들의 관심사 발표를 통해 견문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화학, ' '미적분, ' 같은 특정 직업군에만 도움이 되는 과목들 보다는 평생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공부하는 방법'이나 열심히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시간관리 방법, 금융지식, 개인 재정관리 방법 같은 직업군에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알려 주는 게 학생의 삶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자격증이나 학위가 없어도 무료 리소스들이 있다.


다행인 것은 요즘엔 인터넷 수업도 있고 원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어서 공교육이나 사교육이 아니더라도 의지만 있으면 독학으로 Khan Academy, Youtube 등을 통해 무엇이든지 무료나 저가로 배울 수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멘토도 찾을 수 있다. 이젠 습득할 수 없는 지식은 거의 없다. 물론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이 당장 저자가 주로 다루는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과는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버드 박사는 먼저 학사학위를 받고 좋은 성적을 받고,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에야 지원 가능하듯 정해진 길을 가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세상을 바꾸는 '창조'와 '개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으로 의사는 못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의료 지식을 나누는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거나 의료 지식을 탐구하고 나누는 블로거나 유튜버가 돼서 의사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세상을 바꾼 모든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체제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어떤 분야를 스스로 '창조' 했다. 주어진 환경이 열악하면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주어진 상황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요즘엔 예전보다 적어도 지식 습득 면에서는 많은 기회들이 있다.





근본적인 문제가 정말 '평균의 일반화' 일까?


기회의 불평등은 공교육이 평균의 일반화를 범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환경의 불평등 때문일까?


종국엔 스스로를 탐구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건 개인의 몫이다. 나는 '평균의 일반화'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환경의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경우도 결국엔 대학교수가 될 인재였던 자신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공교육의 문제 때문에 고등학생때 까지 문제아로 낙인찍혔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저자의 늦은 성공이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었던 환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남들보다 더 늦게 자신의 능력을 발현하게 된 것은 그에게 맞는 맞춤 교육을 늦게 찾았다는 단면적인 이유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히는 우수한 부모 밑에서 자란 환경 덕분에 남들은 가지지 못한, 계속해서 시도할 기회를 얻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녀교육에 더 관심이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학생들은 저자가 제시한 자격증이던 맞춤형 교육이던 어떠한 체제를 도입하더라도 유리하다. 아무리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자격증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도 더 우수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어떤 기준이든 더 나은 성과를 낼 것이다. 그 이유는 기회의 불평등에 있다.



저자가 뒤늦게라도 성공할 수 있었던 환경


사실 나는 작가가 평균적 교육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니라, 성공에 유리한 환경을 타고났지만 중간에 잠깐 방황한 사람에 더 가까울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작가가 대학원에 가기 위한 능력 시험인 GRE 문제풀이를 힘들어하며 고전할 때 아버지가 '너는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이니 이런 식으로 한번 풀어보라'라고 획기적인 문제풀이 방식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아이가 둘 있는 20대 중반의 아들한테 대입시험도 아니고 대학원 입학시험에 대해 조언을 해 주는 아버지를 보고 알아볼 수 있듯이, 저자의 아버지는 표준화 시험과 친숙했고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조금 더 찾아보니 저자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성공한 기계공학자였다고 한다. (출처: https://news.harvard.edu/gazette/story/2013/03/a-wild-rose-in-bloom/) 인터넷에서 작가가 태어난 도시와 다녔던 고등학교 지역을 찾아봤는데 태어난 도시는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이고, 다니던 고등학교 지역은 미국 평균보다 소득이 50% 정도 높은 꽤 부촌이었다. 작가는 대학에서 공학 학위를 받고 작가의 어린 시절에 걸쳐 자수성가한 아버지를 통해 교육이 부에 미치는 영향과 교육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며 자랐을 것이다. 그가 대학에서 알아낸 자신한테 맞는 교육법 보다는, 그의 가정환경이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할 수 있게 도와주어서 결국은 성공에 이르게 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고등학교 때 아이가 생겨서 학교를 중퇴하고 정부 보조를 받고 최저임금 파트타임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미국에는 대학 학위가 없어도 소득이 꽤 높은 직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대학 학위가 없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암시를 풍긴다. 조사해 본 결과 작가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에 학교에 다니지 않고 일한 시간은 고작 2년에 불과했다. 대학도 일하는 중간중간 야간학교를 다녔다고 보기에는 대학을 다니면서 아이를 하나 더 낳았음에도 과목수가 많은 의과대학 필수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심리학까지 추가 전공하는데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대학 과정에 전념했을 것이다. 정황상 작가가 가난에 허덕이는 와중에 돈을 벌면서 야간대학을 마친 어린 가장으로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저소득 성인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을 받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2년 동안 육아휴직(육아 휴교?)을 한 다음 원래 계획했던 대학과정을 재개한 것이 더 유력해 보인다.


대학 이후의 행보에서도 작가의 환경의 유리함이 나타난다. 그가 수료한 하버드 교육학 석사는 내 지인들도 다수 수료한 과정이다. 이 하버드 교육학 석사 (Mind, Brain, and Education)는 학비가 1년에 6천만 원에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8천만 원 이상으로 워낙 비싼 데다, 높은 학비에 비해 교육학 특성상 수료하고 나서도 고연봉 직업을 가지기 힘들어서 지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인지 입학 허가율이 60%에 임박한다. 내가 대학생 때 하버드에서 가장 입학 허가율이 높은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어서 알게 됐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 일을 하는 대신 졸업 후에 고수입이 보장되지도 않는 1년에 8천만 원이 드는 대학원 학위를 받고, 그 후에도 보통 3년 걸리는 박사 과정을 (출처: https://www.usnews.com/best-graduate-schools/top-education-schools/harvard-university-06095) 6년을 걸려 수료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난한 젊은 가장이 돈을 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대신 수입이 없는 교육에 - 학사 학위 취득에 5년, 석사 학위 취득에 1년 (+빚 8천만원), 박사 학위 취득에 6년, 총 12년을 투자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학비는 학자금 빚을 내서 다닌다고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이토록 길고 긴 교육에 투자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다. 정황상 작가는 자신이 몸을 바쳐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성공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뒷받침해줄 환경을 가졌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가 가능성이 있는 인재였다고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저 그가 책에서 암시하는 대로 열악한 교육 환경 때문에 자신이 자지고 있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방식을 발견했다기보다는, 더 중요한 문제인 그의 환경이 그가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거듭해서 기회를 주었고, 결국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평균적인 교육이 100% 마음에 들고 잘 맞는 학생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일반적 교육이 다른 학생보다 더 안맞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의 의지력과 환경의 뒷받침이다. 의지가 있거나 환경이 좋은 학생들은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결국에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어떤 학생들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당장 일터로 나가야 한다. 불평등의 원인은 교육 문제 같은 단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교육 개혁만으로는 고칠 수 없는 환경의 불평등, 그리고 그로인한 기회의 불평등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그저 충분히 시도할 여러 기회를 얻지 못했던 건 아닐까? 평균의 일반화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환경으로 인한 기회의 불평등이 아닐까? 어차피 예산을 들여 탐구할 문제라면 공교육을 개혁하는 것보다 오히려 모든 학생들에게 우수한 가정환경을 체험/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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