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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ug 26. 2020

읽기 장애가 있지만 다독합니다

ADHD와 읽기 장애

나는 영어와 한국어 두 개 언어로 주로 읽고 쓰는데 영어에만 읽기 장애가 있다. 영어를 읽으려고 하면 내가 읽으려고 하는 문장이 자꾸 흩어져서 눈으로 잡을 수가 없다. 계속 눈이 윗 문장과 아래 문장으로 왔다 갔다 거려서 지금 읽으려고 하는 문장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웃기게도 말하는 건 영어가 더 편한데 읽고 쓰는 건 한국말이 더 편하다. 




내가 읽는 방법 - 오디오북, 기계가 읽어주는 책 


Audible


나는 고전, 만화책, 소설책, 교과서, 신문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데 영어로 읽기가 힘드니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는 와중에, 오디오북을 알게 되었다. 아마존의 Audible 연 정액제를 통해서 명저들을 만나고 있다.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핸드폰에서 클릭 하나로 1000장이 넘는 책도 20시간이면 다 읽는다. 누군가 읽어주니 책에 집중할 수 있고 머리에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장점이 있지만,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멈추고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렵거나 되새기고 싶은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오디오북은 그렇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오디오를 멈추고 생각하면 되긴 하지만 보통 오디오북을 들을 때는 요리를 하거나 운전을 하거나 무언가 다른 행동을 병행하고 있어서 멈추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활자로 읽는 것보다 덜 여운이 남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정말 좋은 책은 하드카피로 사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눈으로도 같이 읽고 노트해야 하거나 생각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오디오북을 멈추고 활자로 다시 읽는다. 정말 귀찮기 때문에 꽂혀버린 책들만 그렇게 한다.


리디북스/밀리의 서재


한국 책들은 아직 Audible 같은 서비스가 없는 것 같지만, 기계음이 읽어주는 기능이 있다. 사람이 읽어주는 것만큼 전달력은 좋지 않지만, 아무도 안 읽어 주는 것보다는 기계가 읽어주는 게 더 낫다. 나는 리디북스와 리디 셀렉트를 쓰고 있다. 리디 셀렉트는 월 요금을 내면 리디 셀렉트에 포함되어 있는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리디 셀렉트는 내 독서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전에는 알라딘 US나 한국 해외배송 서비스를 이용해서 일 년에 두어 번 한 번에 30~40만 원 정도의 종이책을 박스로 배달받았었는데 (어떤 책을 살 지도 일주일 정도 고민하고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는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월 만원 정도의 정액제로 정말 많은 한국 책들을 접할 수 있다. 작년에는 1년 동안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가 터지고 집에 있는 시간도 많았지만 리디 셀렉트를 이용하고 나서 9월이 되기도 전에 벌써 70권 가까운 책을 읽었다. 유일하게 전자책을 보는 용도로 아이패드 미니까지 중고로 장만했다. 내 아이패드 미니에는 배경음악을 위한 Spotify와 전자책 어플만이 깔려있다. 


밑줄 치며 읽기


오디오북이 없을 때는 밑줄을 치며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읽기 장애를 가지고 미국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밑줄을 치고 두 번, 세 번 읽고, 그래도 집중이 안되면 따라 쓰기를 하면서 공부했던 내가 안쓰럽다. 그나마 밑줄을 치면 읽고 있는 문장과 그 아래 문장을 시각적으로 분리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ADHD와 읽기 장애


내가 읽기 장애가 있다는 걸 자각한 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이다. 나는 왜 흔한 가정통신문이나 긴 이메일을 읽을 수 없어서 항상 덤벙대고 실수했을까? 나는 왜 한글로 읽을 때는 책을 좋아하고 인문학을 좋아하면서 영어로 된 교과서는 읽기가 힘들어서 이과를 선택했을까? 나는 왜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영어책은 읽기 힘들까? 어릴 때는 영어를 못해서 인 줄 알았는데 영어가 모국어만큼 편한 지금은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알아보다 보니 내가 영어를 읽기 힘들어한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만 듣던 난독증이 나라니! 


인터넷에 찾아보니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중에 선택적으로 한 언어에만 읽기 장애가 있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읽기 장애가 ADHD의 흔한 증상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ADHD는 나에게 탐구 욕구와 호기심을 주었지만 야속하게도 그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읽기를 힘들게 해서 비록 몇 년 동안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문제를 알았으니 방법을 강구하면서 읽기 생활이 더 좋아질 날들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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