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연봉은 비례하지 않고 과도한 충성심은 노동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의 능력은 정말 천차만별이라는 것, 그리고 능력의 차이가 크다고 해도 월급의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일 잘하는 사람이 보통 사람의 10명분을 했다면 지금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그 차이는 더 극대화돼서 좋은 알고리즘이 보통의 알고리즘보다 천배 만배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자동전화 프로그램이 몇천, 몇만 명의 콜센터 직원을 대체하는 지금 시대에, 개인의 능력은 예전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놀라운건 이런 시대에도 능력과 연봉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낮은 연봉을 받는 일들이 비일 비재 하다 (특히 여성인 경우). 같은 회사, 같은 직급이라면 하루 종일 인터넷만 보고 아무것도 안 하는 직원과, 같은 직급이지만 상사들의 일들도 도맡아 하는 유능한 직원의 연봉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밑에 나오는 두 명은 나에게 능력과 연봉, 그리고 회사와 직원의 관계에 대해 큰 깨달음을 줬다.
프로그래머 A의 퇴사 스토리
남들보다 일을 10배 이상, 만배 이상 잘하는 사람들이 그에 응당한 월급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A는 아주 뛰어난 프로그래머다. A는 대학 졸업 후 세계적인 IT 대기업에 취직해서 입사한 지 몇 개월 만에 업무를 마스터했다. 업무를 마치고도 남는 시간이 많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몇 개월을 공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명의 프로그래머만 있으면 부서 전원의 일을 자동화시키는 놀라운 프로그램이었다. 더불어 타 부서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더 간편화 시켰다. 부서 사람들의 연봉을 합치면 일 년에 몇십억인데, 그 인력들을 대체할 몇십억 값어치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회사 도 프로그램의 우수함을 인정해서 A를 여러 부서들으로 보내 강의를 시키기도 했다.
업적을 세운 A는 일한 지 2년 동안 두 차례 연봉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회사에선 사내 방침을 앞세우며 A에게 고작 한 단계 승진과 연 3% 연봉 인상만을 해줄 뿐이었다. A보다 무능한 A의 상사들은 그가 욕심이 많다며 수군거렸다. A는 능력에 비례하는 승진을 하는 데엔 한계가 있단 걸 깨달았다. 팀장님과 부장님도 자신보다 무능한데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관료주의로 똘똘 뭉친 회사에서 10년을 기다리는 건 영혼을 살해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결론 내렸다. 고민하다 결국 후임에게 인수인계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는 연봉을 50%만 인상해 줬어도 잡아둘 수 있었던 일당백 인재를 잃었다.
지금 A는 독보적인 일을 하고자 박사 공부를 하고 있다. 박사 공부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부업으로 회사들을 상대로 소프트웨어 컨설팅도 하는데 기획부터 완성까지 1주일도 안 걸려서 그의 인력이 필요한 회사들은 천만 원 이상을 지불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회사에서 일할 땐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 묶여 있으면서 1000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일했는데 회사 밖으로 나와서 부업으로 1주일에 1000만 원을 벌게 되자 새삼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됐다. A는 앞으로 박사학위 수료 이후에도 자신의 노동력에 제값을 지불하지 않는 곳에선 절대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기회를 봐서 최대한 빨리 창업을 할 계획을 세웠다.
A가 미국 IT 대기업이라는 간판에 얽매였다면 아직도 그 회사에서 노동력을 저평가당하고 관료주의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A는 대기업 간판보다 스스로의 능력을 더 믿었고 퇴사를 결정했다. A의 미래가 밝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년 팀장 B
B는 유능하고 성실하다. 한 회사에서 일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지만 B는 30년 동안 한 번도 회사에 승진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묵묵히 업무를 잘 수행하면서 자연스레 진가를 인정받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사원 때부터 착실하게 근무한 결과 차근차근 승진해서 팀장이 됐고,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항상 상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모두들 B만큼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직원이 없다며 칭찬했다.
팀장 이후에는 공석이 나야 승진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공석이 나는 경우는 드물었고, 몇 번 나는 경우에도 퇴직하는 인사와 조금 더 가까웠던 사람이 매번 그 자리를 차지했다. '능력은 내가 더 좋은데, 맡겨준다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묵묵히, 성실히 일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동료 팀장들 중에는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이직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B는 회사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이직 자리를 알아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5년, 10년, 20년이 흘러 직장의 동료들과 후배들이 바뀌는 동안 B는 자리를 지켰다. 시장이 변하면서 회사가 어려워 지자 B의 상사는 미안한 얼굴로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며 연봉 인하를 통보했다. B의 팀에서 사원 두 명이 해고당했고, B는 해고당한 부하직원들의 사원급 업무도 떠안았다. 그래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항상 바빴다. B는 스스로를 어려운 상황에 있는 회사가 연봉 인하를 해서라도 지키고 있는 없어선 안될 존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몇 달 뒤, 30년 전 B와 함께 일하다 이직해서 지금은 협력업체의 사장이 된 전 동료의 아들이 B의 회사의 최연소 30대 임원으로 임명됐다. 태도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 PR을 잘하는, 좋게 말하면 당당하고 나쁘게 말하면 뻔뻔스러운 잘생긴 청년이었다. B의 가슴 한구석이 저렸지만 이제 B는 더 이상 이직한다 해도 갈 곳이 없었다.
A와 B는 둘 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A는 대기업에 다닐 때 회사의 사장만큼 연봉을 받아야 합당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개인 회사가 아니고 주식회사에서 성과를 많이 내는 직원이 월급을 많이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B는 30-40대에 팀장 이상으로 승진해야 합당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성급한 일반화 일 수도 있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회사는 아무리 필요한 인재라 해도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회사에 묶어둘 수 있는 최소한의 연봉만을 지불한다.
승진도 마찬가지다. 묵묵히 일을 잘하는 사람은 승진시켜줄 필요가 없다. 일을 잘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으니 그대로 일을 묵묵히 하도록 두면 된다고 판단한다. 미국에는 '삐걱거리는 바퀴에 기름칠을 해 준다'는 말이 있다. 무언갈 원하면 계속 승진시켜달라, 연봉 인상해달라고 떼를 써야 해 준다는 것이다. 유념할 점은 승진을 시켜주더라도, 능력 비례가 아니라 인사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 생각하기에 적당한 만큼만 해준다. 아무리 사원이 사장보다 일을 잘한다고 해도 인사 결정권자가 차장이면 그 사원이 사장으로 진급할 확률도, 하물며 차장으로 진급할 확률도 0퍼센트인 것이다.
여러 사례들을 관찰하고 나서 나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회사 안에서 노동에 대한 합당한 값을 받기 위해서 오로지 '열심히'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똑똑하게 적당히 오버해서 티를 내고 요구하고 떼도 쓰면서 일해야 몸값을 높일 수 있다. (에너지 낭비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순위로 놓고 나의 욕구를 무조건 참을 필요는 없다. 참는 것은 내 노동의 가치를 깎기도 한다. 회사를 인물화 시켜서 아무리 우리 사이에 우정이 있고 의리가 있다고 믿어 보아도, 내가 회사에 가치를 창출해주는 것을 멈추는 순간 회사는 나를 팽할 것이다. 내가 회사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상관없이.
그리고 뛰어나게 유능한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길게보면 회사 안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자기 사업이나 프리랜싱을 하는 것이 노동의 대가를 최대화하는 것 같다. 회사 직원이 자신이 받는 연봉 이상으로 만들어내는 성과는 오로지 회사의 몫이다. 내가 나를 위해 일하면 그 성과는 모두 내 몫이거나 고객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업무가 익숙해졌을 때 잉여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에 쏟아 승진을 노려보는 대신 나만을 위한 주식, 부동산 투자에 내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