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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Oct 23. 2020

MBA의 최고의 쓸모

예전에는 "우리 대학 도서관에는 x권의 책이 구비되어 있다"는 말이 명문대의 척도였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기관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이라는 기관에 국한돼 있던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되면서 대학의 쓸모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 나는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원까지 갔지만, 요즘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가 대학에 꼭 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투자자의 인터뷰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도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가치는 롱런할 것 같다고 느꼈다. 바로 많은 유복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으로써의 가치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교육은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내가 본 인터뷰의 투자자는 캐나다로 이주해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국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주로 로또티켓과 담배 판매로 생계를 유지했고 많은 한국인 부모들이 그러하듯 자식들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셨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그가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다. 그는 대학에 원서를 넣기 전까지 아이비리그가 뭔지도 몰랐지만 이례적인 스토리와 좋은 성적을 가졌으니 반드시 도전해 보라는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예일대에 지원, 합격, 입학했다.


시급 높은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가 전설적이 투자자 밑에서 일하게 되다


예일대에서는 그를 장학생으로 받아주었지만 학교에 다니는 동안 반드시 학교에서 일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걸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중 가장 시급이 높았던 기부금 관리부서에 지원했다. 졸업생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기부하라고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니야? 쉬운데?라고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지원한 일은 사실 기부금을 유치하는 게 아니라 투자/관리하는 부서였다. 그리고 당시 예일대 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펀드의 최고 관리자)는 전설적인 투자자 데이비드 스웬슨이었다. 그는 전설적인 투자자 밑에서 일하며 예일대에 다니는 동안 위대한 투자자들을 많이 만났고 자신도 언젠가 자기만의 펀드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아마도, MBA의 최고의 쓸모


그는 졸업 후 2개의 헤지펀드에서 일하며 좋은 경력을 쌓았지만 30에 펀드를 세우겠다는 꿈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졌다. 자신의 펀드를 세우려면 투자금을 유치해야 하는데, 투자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눈에 띌 만한 대단한 경력을 가진건 아니었다. (많은 투자자들이 자신의 집안 재산을 관리하면서 시작하거나, 아니면 유명한 펀드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만난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아서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부유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투자 능력을 가까이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생각해 낸 방법은 하버드 MBA였다. 그리고 입학한 지 1년 만에 $11M (한화 약 130억) 투자제안을 받은 후 MBA 프로그램에서 중퇴했다. 지금 그는 아주 성공한 투자자다.


(그의 인터뷰는 유투브에 있지만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아 링크를 걸지 않겠습니니다. 구글에서 Shawspring Partners의 Dennis Hong 를 검색하시면 더 알아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학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자산은 지식이 아닌 학생일 수도 있다


그의 인터뷰를 보고 많은걸 느꼈다. 그는 교육기관을 능동적으로 이용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대학에 진학했을 때 나는 대학에서 얻어야 할 게 뭔지 정말 혼란스러웠다. (부끄럽지만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는 취업이 내게 주어진 다음 코스인 건가?'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뭔가를 나에게 던져주길 수동적으로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투자자는 원하는 걸 찾아서 MBA에 갔다. 대학에서밖에 줄 수 없는 명확한 '그곳에 모여있는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MBA에서 100% 확률로 찾을  있는 목표물이 있었다. 학교에서 얻는 지식과 동기들에게서 얻는 영향은 그에게는 보너스에 불과했다.



MBA에 부유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


평균적으로 명문 MBA 졸업생들은 2억에 근접한 연봉을 받는다. 이것만으로도 MBA는 충분히 진학할 가치가 있고, 이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MBA에 진학한다. 그런데 아마도 이 투자자는 MBA에 진학하기 전에도 그보다 낮지 않은 연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도 평소에 찾기 힘들 만큼 부유한 (몇 십억의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 MBA에 모여 있는 이유는 기회비용 때문이다. 하버드 MBA의 학비는 1년에 8천만 원 이상, 숙식까지 계산하면 1억 3천만 원 이상이다. 그리고 평균 하버드 MBA 입학생의 나이는 만 27세이다. 보통 사람들이 만 22세에 대학을 졸업하는 걸 감안하면 최대 5년 정도의 경력을 쌓았을 것이다. 막 일을 시작해서 모은 돈도 많지 않고, 커리어에 가속도가 붙을 나이에 일을 하는 대신 회사를 나와서 일 년에 1억 3천만 원 이상을 쓰면서 MBA에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하버드 MBA 입학생들의 입학 전 연봉은 평균 1억 2천이다. 벌 수 있었던 돈과 MBA 비용을 생각하면 1년에 기회비용이 2억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며, 2년이면 4억이다. 이런 MBA 특성상 부유한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지원을 받거나 장학금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받는 교육보다도 그곳에서 형성하는 네트워크가 훨씬 더 값질 수도 있다. 그곳에서 배우는 것들이 책에서 나오는지, 인터넷에서 나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MBA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모든 대학들이 이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대학에 4년 다니는 시간도 사실 대신 일 할 수 있는 시간이고, 요즘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실무에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 년에 2~5천만 원의 학비를 내고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미국 기준)




과거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소용없지만 나도 시간을 돌려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네트워킹을 최선의 가치로 둘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리고 만약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한다면, 아마 "반드시 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목표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것 같다.


글이 매우 중구난방이었던 것 같지만 내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인 정보는 어디에나 있는데 대학에 가야 하는가? 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은 것 같다. 아마도 세계의 모든 지식들이 인터넷으로 옮겨진다고 해도 대학들은 많은 부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하나의 소셜클럽으로써의 가치는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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