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Sep 17. 2020

잘 안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들

하락세인 회사도, 성장세인 회사도 경험에 장단점이 있다. 

"배가 침몰하면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능력에 상관없이 다 죽는다.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다면 얼른 내려라." 대학에 다닐 때 어떤 유명한 기업가가 강연하러 오셔서 한 말씀이다. 그 후에 나는 성장세인 회사에서도 일해보고, 안정적인 회사에서도 일해보고, 하락세인 회사에서 가장 오래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그 강연자가 해준 말은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하락세인 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들이 오히려 더 값진 경험인 것 같기도 하다. 다음은 하락세인 회사에서 4년 넘게 일하면서 배운 것들이다. 



1. 영원히 잘되는 회사, 영원히 잘되는 산업은 없다.


우리 회사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잘되는 회사여서 맨하탄의 한 복판의 아주 좋은 건물을 쓰다가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우리 회사의 제품이 필요 없어져서 점점 변방에서 변방으로 옮겨와서 지금은 맨하탄의 끄트머리에 있는 건물을 쓰고 있다. 세상이 발전하는 속도와 방향은 생각보다 빠르고 예측 불가능하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기업들이 탄생했다 스러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산업들 역시 끊임없이 탄생했다가 스러진다. 


지금 미국과 세계 리테일 마켓을 꽉 잡고 있는 것도 모자라 목줄을 단단히 채우고 있는 아마존의 제프 베소스 마저도 '우리 회사는 아마도 몇십 년 후에 없어질 것이다. 그게 세상의 이치이니 그때까지 잘해보자' 비슷한 말을 했을 정도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대표적인 성장세 회사인 아마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세상이 바뀌어서 아마존이 문을 닫을 수도 있고, 자신들이 아마존에서 하고 있는 일이 언젠가는 쓸모없어질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135년 전에 생긴 다우 존스 상장회사들 중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회사는 유일하게 General Electric 밖에 없다고 한다. 



2. 회사는 개인을 책임질 의무가 없다. (잘될 때는 마치 책임져 줄 것 같다.)


회사가 잘 될 때는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원도 많이 해주고 교육도 시켜주는 기댈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나도 예전에는 체육관 멤버십도 지원받고 여행에 갈 때도 회사와 연계된 곳으로 가서 할인을 받으면서 회사에 남는 한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모두가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의 베네핏에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 삶의 구석구석에 회사의 지원을 받는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회사는 영리 단체이며, 회사에 충분한 자원이 있을 때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사원의 발전을 지원하지만 개인을 책임져줄 의무는 전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퇴사하고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기댈 곳이 아무 데도 없음에 황당해한다고 한다. 하락세인 회사에서 일하면 개인은 개인의 능력과 재산에 기대야 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 수 있다. 


흔히들 일본에서 '종신고용'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 일본 사람이 쓴 책에 따르면 그건 아니라고 한다. (야마구치 슈의 책이었던 것 같다) 일본이 '종신고용'을 한다고 하던 시절에는 일본이 큰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을 때였고 이 시절이 아주 오래 지속되어서 기업들은 회사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 항상 인원을 충원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일하고 있는 직원을 웬만하면 해고하지 않은 것뿐, '종신고용'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발전과 금전적 이익을 위해 회사에 다니듯이 회사도 회사의 발전과 금전적 이익을 위해 사원을 지원한다. 그뿐이다. 



3. 위기 대처 능력을 키우고 다양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미래를 계획하려면 바뀌는 상황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세상 돌아가는 걸 공부하고 그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한다.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대안이 있어야 하고 그를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만 해온 사람은 세상이 바뀌었을 때 그 한 가지 일이 쓸모없어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아서 새로운 것을 배워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4. 연차가 쌓이면서 연봉이 높아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은퇴준비는 은퇴가 까마득할 때부터 하는 거다. 


개인적으로 연차가 쌓이면서 연봉이 높아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학교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환경이 아니고 하던 일이 굳어져서 같은 일을 몇 년 동안 한다. 그러다 직책이 높아지면 조금 변형된 일을 하면서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연차가 쌓여서 연봉이 높아지고 직책도 높아지는데 비례하는 만큼 능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받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회사에서 인원을 줄일 때 월급은 많이 받고 능력은 약간 더 좋은 높은 사람들부터 해고하려 한다. 안 그래도 회사 안에 높은 자리는 많이 없어서 경쟁이 치열한 데다, 높은 자리의 고용이 불안정 한걸 알기 때문에 높은 연봉을 받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도, 활발하게 회사에 가치 창출을 해 주고 있지 않는 이상 불안감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사내 정치의 상당 부분도 가치 창출을 하지 않고도 자리를 지키려고 남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는 와중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락세인 회사일 수록 가치를 창출하기가 더 힘들어져서 정치가 심하다. (이 이유 때문에 40-50대부터는 잘 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하락세인 회사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는 걸 지켜보았다. 그중에는 꽤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도 있었다. 그들이 회사에 남으려고 애쓰다가 일터를 떠나게 되는 것을 보고 은퇴에 대해 일찍부터 생각하게 됐다. 치열한 정치와 불안정한 고용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은퇴 준비는 은퇴가 까마득할 때부터 해야 하는 거라는 것도 배웠다.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부터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서 길게 볼 수 없는 데다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가 힘들다. 



5. 잘 되는 회사에서 일 못하는 사람은 티가 나지 않지만, 안 되는 회사에서 일 못하는 사람은 티가 난다. 


잘 되는 회사는 일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회사 전체가 성장하기 때문에 크게 티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안 되는 회사는 일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이 확연하게 차이 난다. 일을 잘하는 건 어떤 건지, 못 하는 건 어떤 건지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얼마 전 코로의 여파로 인해 부하직원이 해고됐다. 상사와 부하직원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솔직하게 그녀에게 잘된 일이라고 했다. 지금은 해고됐다는 사실이 절망적이고 비참하겠지만, 길게 보면 회사에 남아 몇 년 동안 월급을 받으면서 같은 일을 하기보다는 이번 기회에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해 보고 다양한 능력을 키우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녀에게 우리 회사에서 일 해 본 경험이 당시에는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잘 되는 회사에서는 하지 않았을 고민을 해 보고 인생의 방향을 더 잘 잡을 수 있는 발전적인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