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은 받고 싶지만 유명하고 싶지는 않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하나의 본능인 것 같다.
유명세를 즐기는 워렌 버핏과 그늘을 선호하는 찰리 멍거
내가 가장 존경하는 투자자는 워렌 버핏이 아닌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 찰리 멍거다. 둘은 스타일이 다르다. 유명세를 즐기는 워렌 버핏에 비해 찰리 멍거는 그늘에 있는걸 선호한다. 그 둘이 개최하는 컨퍼런스 스타일에서도 그들의 차이점을 엿볼 수 있다. 워런 버핏은 매년 1주일 간 몇만 명이 참여하는 컨퍼런스를 열고,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굿즈 - 티셔츠, 골프공, 쿠션, 심지어 팬티까지 팔 정도로 유명세를 즐긴다. 반면 찰리 멍거는 자신의 동네 캘리포니아 파사디나 근처에서 매년 이삼백 명의 투자 전문인들만이 모이는 1시간 정도의 작은 자리를 마련한다.
유명인의 삶의 단면
2년 전 찰리 멍거의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유명인의 삶의 단면을 보았다. 컨퍼런스가 시작하기 전에, 나를 예쁘게 본 (여자는 300명 중 10명도 되지 않았고 젊은 여자는 두어명 정도였다) 컨퍼런스 관계자에게 아주 좋은 자리를 받았는데 TV에도 자주 나오는 아주 유명한 투자자의 바로 옆 자리였다. 그의 나이는 80대 후반이었고 의자 밑에 보행 보조 기구를 두고 있었다. 걷는게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멍거와 친분이 있어서 참석한 것이리라.
이 컨퍼런스의 의자들은 마치 영화관 좌석처럼 처럼 중간 자리에 들어가기 아주 힘들게 배치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서 내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그 유명 투자자에게 말을 걸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어서 대화가 다 들렸는데,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존경한다는, 굳이 비좁은 자리까지 비집고 들어와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옆에 앉은 나까지 불편하게 하면서 할 필요는 없는 그런 말이었다. 그 투자자는 정말 피곤하고 짜증 나 보이면서도 최대한 내색 않고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였다. 나는 그와 몇 마디를 나누긴 했지만 최대한 가만히 있게 해 주고 싶어서 그쪽은 잘 쳐다보지도 않았다.
유명한건 정말 불편하구나
콘퍼런스가 시작하고, 95세인 찰리 멍거가 휠체어에 실려 나왔다. 몸은 이제 노쇠해서 눈도 거의 보이지 않고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지만, '걸어 다니는 책'이라고 불릴 정도로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통찰력 있는 대답을 하고 위트 있는 농담을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고작 몇백 명이 모인 자리였지만 카메라 셔터가 멈추지 않았고, 컨퍼런스가 끝나고 그가 다시 휠체어에 실려 밀려 나가는 와중에도 그의 팬들이 그의 길목을 가로막고 찰리가 나오도록 셀카를 찍어댔다. 그때 깨달았다. 유명하단 건 정말 불편하구나.
만약에 워렌 버핏이라면 어떨까? 워렌 버핏은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져 있다. 전설적인 투자자이며 무엇보다 82조의 자산가로 세계 어디를 가나 얼굴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는 100미터를 가도 길 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길을 가로막고 셀카를 찍는 건 물론이고, 걸어 다니는 82조로 모든 범죄자의 타깃이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 모두 납치범의 타깃일 거다. 그는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무서워서 다니지 못할 것이고, 보디가드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을 것이고, 아마도 사람을 만난다면 자신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게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나야지만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의 집은 아주 높은 성벽이 둘러져 있다고 한다. 물론 그는 그가 선택해서 유명한 거지만 (투자자들 중 워렌 버핏만큼 잘 하지만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름을 남기는 데는 희생이 따른단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