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적었던 일기이지만, 유산 후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엘에이 3달 살기를 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임신을 확인하고, 저번 주에는 유산 사실을 확인했고 약물 배출 과정을 시작했다. 어제는 바닷가 앞산 중턱에 위치한 말리부 집으로 숙소를 옮겼다. 언덕을 오르는데만 차로 20분이 걸리고 가장 가까운 마트가 30분 거리일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그런데 경치가 너무 좋고 자연 바로 옆에 있어서 아주 아름답고 집의 인테리어의 느낌도 너무 좋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이런 곳을 선택한 남편이 고맙다. 남편은 살갑지는 않지만 모든 선택을 할 때 내가 좋아할지를 고려하고 선택한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어제 남편과 집 앞 야외 의자에 앉아서 아래의 산과 바다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외진 곳이라 오염이 없어서 그런지 위를 보면 하늘과 가까워진 것처럼 별이 정말 많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래의 산과 바다, 위의 별을 바라보면서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즐기고 느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어제 별을 보고 와서 자다가 새벽녘에 깼다. 머리가 아프고 유산 배출 약을 먹고 나서 이틀 넘게 변을 보지 못해서 배가 무겁고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루에도 여러 번 자궁이 콕콕 쑤시는데도 아직 아기집이 다 배출되지 않은 것 같다. 내일 의사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약을 한번 더 먹어야 할지 다음 주에 수술을 해야 할지 의논해야 할 것 같다. 수술하고 싶지 않고 무섭지만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고 아기가 죽은 지 벌써 3주 가까이 됐는데 부패를 시작하면 자궁에 염증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겠지. 왜 약이 듣지 않아서 수술까지 해야 하나 하는 반발감이 들지만 그냥 내 몸의 약에 대한 반응이 그런 걸 기분 나빠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발치에서 자고 있는 강아지가 내가 깬 걸 알고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강아지의 심장소리는 나와 교감하고 있는 편안한 상태에서는 꽤 느리게 뛰었지만 그래도 사람 심장보다 빨리 뛰었다. 심장이 빨리 뛰어서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걸까? 조금 더 느리게 뛰지. 강아지가 언젠간 죽을 때는 유산한 것보다 더 슬플 것 같았다. 문득 강아지의 심장도 언젠간 멈추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속이 철렁했다. 초음파로 아기 심장이 그렇게 갑자기 멈출 수 있다는 걸 안 다음부터는 그런 두려움이 생겼다. 자고 있는 남편을 끌어안고도 남편 심장 소리에 우리의 생명이 너무 덧없고 연약한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남편이 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이제 유산이라는 작은 슬픔이 생겼지만, 사실 내 인생을 전체로 보면 개인에게 이렇게 감사할게 많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사한 게 많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항상 행복과 감사에 겨워하며 살고 있을 텐데 작은 슬픔을 반복해서 확대하고 느끼면서 혼자 눈물을 훔치는 스스로가 이해는 가지만 어리석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 쓸데없는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걸까. 새벽에 깨서 소파에 누워 울다가 다시 잠들었다가 말리부에서 보이는 산과 바다의 절경을 보면서 일어났다. 내가 소파에서 자고 있는걸 안 남편이 밤새 옆으로 와서 내 어깨를 베고 자고 있었다. 엘에이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의 친구 커플이 아침 인사로 맞아준다. 이렇게 많이 가지고 많이 사랑받고 행복한 내가 슬퍼도 되는 걸까? 지금도 마당에 앉아서 새소리와 바람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울다가 감사하다가 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방금 전에는 마당에 있는 인공분수에 벌새가 하나 왔다 갔다. 참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