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남편의 대화 중 제가 한 말은 초록색으로, 남편이 한 말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나
남편
이야기를 하다가 "ㅇㅇ가 나를 싫어했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할까?" 남편에게 물었다. "너 오만하잖아. 너는 네 스스로가 마음에 들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여. 너의 결함을 좀 더 드러내면 사람들이 널 더 좋아하지 않을까?" 내가 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오히려 반대인데. 나는 당연히 너무도 결함이 많고 마음에 안 드는 게 너무 많은데 그렇게 보일 수가 있다니 놀라웠다. "내가 자신 있어 보인다고? 말도 안 돼. 당연히 너무 결함이 많지. 너도 내가 결함을 말하면 날 더 좋아해 줄 것 같아? 말해줄까?" "한번 해봐."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내가 데이터 과학자인데도 불구하고 데이터 과학을 잘 못해서 불안해. 나 자신을 데이터 과학자라고 부르는 것도 창피해. 대학원까지 가면서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공부를 몇 년을 했는데 제대로 못했는지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회사에선 일 잘하잖아." 그건 운이 좋게 지금 회사에서 필요한걸 어쩌다 알아서 그런 거고. 이 회사에서 나가면 커리어가 끊길 거야.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다른걸 이것저것 하고 있지만 그중 뭐 하나 집중해서 잘하는 게 없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네가 부러워.
그리고 먹는 걸 너무 밝혀서 너무 많이 먹는 데다가 먹다 보면 너무 게걸스럽게 먹고 있어서 문득 먹다가 네가 그걸 보고 충격받을까 봐 눈치가 보여. 그런데 문제는 그걸 먹기 전에 생각하지 않고 항상 이미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는 중간에 생각한다는 거지. "말도 안 돼! 나는 네가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은데!"
게다가 마음껏 먹으면 살이 찔까 봐 걱정돼. 운동을 좋아하면서도 사실 '나는 오로지 살이 찌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닐까? 운동을 좋아한단 건 자기 세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팔이 너무 굵어서 고민이고 살이 전부 셀룰라이트라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한숨이 나와. 외모에 대해선 너무 많은데. 내가 너무 못생겨 보여. "그건 진짜 말도 안 돼." 난 누군가가 나같이 생겼다면 못생겼다고 생각할 거야. 키도 너무 크고 코도 너무 크고 입술은 보랏빛이야. 턱도 너무 작고 얼굴빛도 노랗고 어두워. 치아도 누렇고. 그냥 다 누래. 아니다 외모는 너무 많아서 다 말하려면 너무 오래 걸리니 그냥 넘어갈게. "정말 미쳤어."
사람들이랑 말할 때도 무슨 말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서 다른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할까 봐 걱정돼. 그러고 보면 난 정말 멍청한 것 같아. 배려심도 없고. 좀 생각해보고 말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돼. 게걸스럽게 먹는 것도 그렇고 뭘 하다 보면 그냥 정신줄을 놓고 하고 있어. 스스로를 하나 컨트롤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원망스러워. 그리고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정말 창피해. 그게 잘못된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도 창피해. 글을 쓸 때도 사람들이 내 글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 특히 글을 쓸 때는 한껏 있어 보이려고 노력을 하지만 내 미흡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글에서 묻어 나올까 봐 올리기가 두려워. 그래서 글을 쓰긴 해도 올리는 일이 너무 힘들어. 그리고 "이제 그만해! 그거면 충분해."
나는 부정적이고 불안정한 생각에 빠져 있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 스스로를 한심해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고 한심한 부분을 고치는데 써야 하는데. 별 볼 일 없는 나를 숨기기 위해 그럴듯한 말과 태도로 겉포장을 하려고 했던 게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나? 나 자신의 결함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고 만약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마치 상대방에게 "아냐 너는 그렇지 않아. 너는 훌륭해"라는 위로를 듣고 싶은 것 같잖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귀찮고 불편하겠어. 그래서 말 안 하는 거야. (이미 듣지 않고 있음)
나와 매일매일 함께 생활하고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남편이 나에 대해 이렇게도 모른다는 게 놀랍다. 생각해 보면 부부보다 더 오래 알아온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도 오해가 생긴다. 문득 내가 판단하고 단정 짓고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했던 사람들도 남편이 내가 오만하다고 생각했듯이 사실은 내가 그들에 대해 잘 모르고 판단했던 거란걸 알았다. 사실 사정없는 사람은 없고 간단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이제껏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해 왔다는 걸 남편의 오해로 인해 알게 됐다. 앞으로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면 반드시 '이건 오해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서 만천하에 내 결함들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