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Jun 16. 2021

월세를 내지 않겠다는 세입자와의조정 과정

6월 2일, 동업자가 세입자 E의 문자를 전달해 주었다. 문자의 내용은 집의 온/난방 기계가 잘못 설치되어 있고 필터가 없어서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작년에 자주 아팠고 전기세가 항상 $300을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동업자가 전달해 준 세입자의 문자

이 집의 온/난방 시스템은 작년에 집을 전체 수리하면서 설치한 새것이었고 E는 수리 후 처음으로 들어온 세입자다. 집수리를 담당하고 있는 동업자가 집값이 저렴한 동네에 맞지 않게 큰 비용을 들여 중앙 낸/난방을 설치했는데 잘못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자를 전달받고 나서 시스템을 꺼두면 문제가 없으니 급한 수리는 아니지만, 나 또한 공기가 좋지 못한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알레르기가 심해졌던 경험이 있기에 빨리 고쳐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리를 담당하는 동업자가 바로 연락을 돌려 이틀 후에 바로 갈 수 있는 사람을 보냈고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 창문에 설치할 수 있는 에어컨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E가 거절했다. 


6월 7일. 월세를 내는 날은 매달 1일이지만 모든 세입자들에게 5일의 유예기간을 주고 있다. 5일이 지나면 연체료를 받는 게 계약 조건이지만 착한 동업자가 깜빡 잊어버렸을 거라며 항상 연체료를 면제해 준다. E는 단 한 번도 제때 월세를 낸 적이 없을 정도로 월세 면에서는 불량한 세입자다. 늦게 낼 때도 있지만 사전에 늦게 낼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는 다른 세입자들과는 달리 양해를 구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아예 내지 않는 경우는 없었기에 경제적 상황보다는 책임감의 문제라고 판단한 내가 보다 못해서 자동이체를 권유했지만 소용없었다. 벌써 1년을 넘게 월세를 늦게 내는 E가 마뜩잖아서 유예기간 5일을 넘긴 7일에도 소식이 없자 연체료를 포함한 월세를 내라는 문자를 보냈다. E에게서 자신이 직접 수리해야 할 경우를 위해 월세를 낼 수 없으며 온/난방 시스템이 고쳐진 후 자신의 '거주성'이 확보되면 그때 월세를 내겠다는 답신이 돌아왔다.

밀린 월세를 내라는 문자에 E의 답신

거주성

'거주성'은 집주인을 협박하는 세입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모든 집주인은 법적으로 세입자가 빌리고 있는 집의 '거주성'을 보장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서 '거주성'이라 함은 집을 오갈 수 있는 문이 있고 물이 나오고 화장실을 갖추어야 하는 등 '의식주'중 '주'가 갖추어야 할 아주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함을 뜻한다. 


방치된 수리와 월세의 의무 법

아마 E는 뉴저지 주에 있는 한 부동산 법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이 집이 위치한 뉴저지 주에는 집주인이 '거주성'을 보장하지 않고 꼭 필요한 수리를 해주지 않을 경우 세입자가 직접 사람을 불러 수리하고 수리비용이 완전히 제해질 때까지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법이 있다. 


이 법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수리가 '거주성'에 포함되는 꼭 필요한 수리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주인이 수리를 방치했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두 조건 중 하나도 충족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집들이 갖추고 있지 않은 중앙 냉/난방 시스템은 당연히 '거주성'의 기본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고급 장치이다. 게다가 방치는커녕 곧바로 수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E가 법적 이유가 아니면 쓰지 않는 단어인 '거주성'을 언급한 걸 보고 E가 법을 잘 모르거나 상황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한참 생각한 끝에 E에게 문자를 보냈다. 


"동업자에게 수리를 요청했다는 말은 전해 들었습니다. 바로 업자를 보냈으니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수리를 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동안 더 빨리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저희에게 소개해 준다면 저희가 직접 컨택하거나 당신이 지불한 수리비를 영수증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냉/난방 시스템은 '거주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세입자로서 아직 월세의 책임이 있습니다. '거주성'이란 자물쇠가 달린 문 등 더 기본적인 집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뜻합니다. '거주성'에 포함되던 포함되지 않던 필요한 수리는 빨리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집이 당신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면 계약을 파기하고 이사해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월세를 지불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거주성'과 월세의 의무에 대해 세입자에게 보낸 문자


고심해서 합리적인 문자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황당한 답신이 왔다. "온갖 쥐와 동물 똥이 뒹구는 지하실에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상황에서 월세를 낼 의무가 없다고 확신하지만 제가 법을 어기고 있는 건지 내일 변호사랑 이야기해 보죠." 


월세를 내지 않을 것이며 변호사와 이야기하겠다는 세입자의 문자


세입자가 나쁜 의도를 갖고 있단 걸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문자였다. 세입자는 우리가 집주인으로써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협박하고 있었다. 강과 가까운 주택이라 동물이나 해충이 아예 없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집에서 작년에 오히려 깨끗하고 곁에 두면 이롭다고 하는 동물인 뉴질랜드 주머니쥐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업자를 보낸 일 말고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중앙 낸/난방 시스템이 잘못 설치되어 있어서 지하실에서 공기를 끌어올린다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았다. 자격증을 가진 전문 업자가 설치하고 시에서 몇 달이 걸릴 정도로 꼼꼼하게 점검했다. 심지어 완공 당시 점검기간 때문에 전입이 늦어진 E에게 사과의 의미로 두 달 월세를 무료로 해 주고 보증금도 반을 면제해 주었다. 상황이 이런데 집주인을 협박하려고 변호사를 언급하는 걸 보고 더 이상 이야기하다가는 감정이 상하는 대화를 하게 될 것 같아서 대화를 멈추었다. 


동업자에게 대신 대화해 달라고 하고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변호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동업자가 통화를 했지만 다시 한번 월세를 내지 않겠으나 이사 나가지도 않겠다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변호사와의 대화

부동산 전문 변호사와 상담 후 예상했던 대로 E가 월세를 내지 않는 건 위법이었다. 변호사는 법적으로 내가 E를 당장이라도 쫓아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지금 축출 신청을 하고 2달 후에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경찰이 와서 끌고 나간다고 했다. 변호사와 대화를 하다가 생각해 보니 얼마 전 E와 계약을 연장했을 때 계약서에 2021-2022라고 기입하는 대신 2020-2021이라고 잘못 기입했었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던 게 기억났다. 변호사에게 이야기하니 이 실수를 또 이용할 방법이 있었다. 계약 기간이 명확하지 않은 계약은 다달이 연장하는 걸로 쳐서 양쪽에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E에게 30일 내에 나가줄 것을 통보할 수 있다. 만약 E가 나가지 않으면 월세를 마음대로 올려서 예를 들어 한 달에 1000만 원으로 올린 후, E가 나가지 않는다면 축출 신청을 해서 쫓아내고 난 후 또다시 밀린 월세에 대한 소송을 해서 한 달에 1000만 원씩 내지 않은 만큼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착한 동업자는 물론이고 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법적으로 우리에게 아무 문제가 없단 걸 확인하니 안심이 됐다. 우리는 E를 축출하는 것도 최대한 피하고 싶고 좋게 대화로 해결하고 싶다. 법을 확실하게 알아보고 동업자와 상의 후 결론을 내렸다. 이미 최대한 빨리 수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E가 통풍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강을 염려하고 있으니 다시 한번 빨리 수리하겠다는 의미로 수리가 끝날 때까지 월세를 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해주기로 했다. 단, 수리가 끝난 후 월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축출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세입자에게 보낸 문자: 

"변호사와 대화 후 우리가 수리를 방치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당신이 월세를 내지 않는 것이 위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월세를 내지 않는 세입자를 곧바로 축출 신청할 수 있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당신의 변호사에게 같은 이야기를 전달받았을 걸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의의 의미로 수리가 끝날 때까지 월세를 미루어도 법적 조치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수리가 끝나고 나서는 반드시 월세를 제때 납부해야 합니다. 시스템 고장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껴서 유감이고 수리가 끝나는 동안 창문 에어컨 설치를 희망하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런데 이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업자에게 연락이 왔다. 서로 다른 두 업체를 보냈지만 냉/난방과 통풍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한 군데 손볼 곳은 있지만 작동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하실의 공기가 올라온 단건 세입자의 망상이었다. 며칠 동안 분주하게 움직인 게 허무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뉴저지 주의 부동산 전문 변호사도 알게 되고 법도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서 아주 시간낭비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음 주까지 월세를 내지 않으면 축출 신청하겠다고 E에게 전달하자 당일에 바로 월세와 연체료까지 입금됐다. E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바로 내보낼 계획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 고용주였어도 그럴 수 있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