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Feb 12. 2020

스크린한테 빼앗겼던 정신 책으로 다시 찾아오기 3년째

인터넷 드라우닝에서 자주적 사고가 가능하기까지

2017년 말, 일 년을 정리하면서 내년에는 스스로에게 무슨 공약을 내걸까, 생각했다. 뒤돌아 보니 2017년에 가장 고치고 싶었던 건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이것저것을 클릭하면서 읽다 하루가 다 지나가 있는 시간 소비 행태였다.


컴퓨터 스크린을 하루 종일 응시하면서 끊임없이 무언갈 클릭하고 읽긴 읽었는데 딱히 어떤 걸 배운 느낌이 들지 않았고, 관심사나 궁금증도 충족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읽은 글들은 제목만 자극적이고 깊이가 없었다. 돌아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유혹적인 제목의 기사들을 읽으면서 내 시간과 정신을 힘없이 맡겨버리고 시간이 흘려보내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나는 인터넷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고 있는 건, 인터넷을 즐기는 '서핑 (파도를 타다)'이 아니라 인터넷 '드라우닝(drowning -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임을 멈추고 내 시간과 내 뇌를 더 능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초등학교 때 이후로 연락이 거의 끊어졌던 나의 오랜 친구인 책을 떠올렸다. 책과 다시 친구가 되는 게 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가 하고 있던 것 (그저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2018년 새해 다짐을 그저 막연히 '책 많이 읽기'로 선정했다.


왜 책인가?

인터넷을 이용해서 무언갈 읽을 때는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기가 용이하고 한 가지 주제를 진득하게 파는 일이 많이 없다. 반면에 책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한 사람(대체로 전문가)의 이야기를 10시간 이상 들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중간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있긴 하지만 모든 페이지들을 다 읽고 나면 전문가의 엑기쓰를 뽑아서 내 것으로 만든 기분이고 저자의 내면에 들어갔다 나온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 고르기

책을 주문하기 전에 며칠을 고민했다. 내가 더 채우고 싶은 지식분야는 무엇인지,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누구고 이들에 대한 책이나 이들이 추천하는 책들은 무엇인지 리스트를 뽑아 한번에 20권 이상 박스로 배달받았다. 소설, 문학, 교양, 과학 책 등 가리지 않고 전부다 리스트에 때려 넣었다. 그러나 웬만하면 너무 '베스트셀러' 위조는 사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책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저자가 추천한 책들로 시작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더 나의 취향에는 맞는 걸 느꼈다.  


책은 언제 읽나

딱히 책을 읽으려고 시간을 정해둔 건 아니다. 한 권씩 가방에 넣어서 출퇴근하면서 읽고, 운전하면서 오디오북으로 듣고, 음식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읽고, 집에서 할 게 없을 때 읽었다. 평소라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확인했을 시간이지만 그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었다. 재미있는 책들은 출근도 안 하고 읽고 싶을 만큼 재밌어서 정신을 놓고 읽었다. 그러다 보니 평균 1-2주에 1권 정도 읽었던 것 같다. 몇 권을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중에는 대학 교과서만큼 두꺼운 책들도 있었고 단편소설만큼 짧은 책들도 있었다.


책을 읽고 달라진 점


나는 아직 갈길이 멀다

겸손해졌다. 나는 지구에서 가장 진화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제 나보다 30년 더 진화한 인간들이 나오고 있지만) 내가 100년 전, 200년 전 사람들보다 분명히 더 사고능력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키케로나 소크라테스의 글들을 읽고 2-3천 년 사람들에 비해 내 생각의 깊이가 전혀 진화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또 깊은 사상가들(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나 찰리 멍거 같은)의 깊고 복잡하지만 명료하게 풀어낸 생각들을 읽는 것 만 하더라도 고군분투해야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단순한 아메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비딕에서 이스마엘이 한 말 중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가 아주 파격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다 역사에서 누군가가 생각해보고 시도해본 것이다"라는 비슷한 말이 있었는데 참 알맞은 명언인 것 같다. 그래서 어차피 새로운 것도 없는데 스스로 무언갈 창조하라고 달달 볶기보다는 이전에 존재했던 위대한 사람들이 하는 말만 주워 들어도 중간은 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관심사는 나도 모름

책을 읽어보고 느낀 점은,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전에는 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 위주로만 책을 골랐었는데 몇 권의 책이 그 생각을 바꿔놓았다. 그중 하나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물리는 고등학교 때 재미없다고 느낀 이후로 내가 전혀 관심 없어하는 분야로 정리해 버렸었는데 평생을 물리학에 열정을 다한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란 책을 읽고 물리에 대한 내 관점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칼 세이건의 눈으로 본 물리는 내가 기억하는 재미없는 공식들이 아니었고 경이로움이 느껴질 만큼 아름답고 세상을 하나로 묶는 이치이며 연결고리였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전에는 역사와 생물학이 서로 다른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세계라는 하나의 이야기 중에 하나의 장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생물학 때문에 역사가 바뀌기도, 역사 때문에 지리가 바뀌기도 한다. 지리 때문에 철학이 생기기도 하고, 철학 때문에 전쟁이 나고, 전쟁 때문에 금융이라는 시스템이 생기듯 모든 것은 여러 개의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의 일부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와 상관없는 주제라 하더라도 사실은 나와 상관이 있는 주제란 걸 알았다.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일들이 그래서 있는 것 같다.


넓어지는 견문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고 열정을 쏟았던 위대한 사람이 혼신을 담아 쓴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지식을 주입하니 당연히 견문도 넓어진다. 그 사람이 전달하고자 했던 지식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 정보를 전달하는 스타일,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 등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이 느끼게 해 준다. 책 한 권으로 롤러코스터를 탄다. 또,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서 여러 분야를 접목할 응용적인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로 인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다.


내 시간은 내 것이 되었다.

책으로 인해 내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게 되었다. 내 관심분야나 유익할 것 같은 책들을 리스트로 뽑고 시간을 들여 읽고, 느낀 점을 끄적이는 모든 시간들이 수동적이 아닌 자기 주도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책들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고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정하기도 한다. 어떤 책이 특별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그 책을 기다리면서 기대하고 있고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책을 읽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진 않은 것 같다. 예전과 달리 혼자 사색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고, 생각을 나누고자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찾게 된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나의 독서 습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출퇴근을 할 때, 샤워하고 나와서 외출 준비할 때, 등등 틈틈이 오디오북이나 활자를 읽는다. 벌써부터 2017년보다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운 기분인데,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읽을 책들은 어떨까? 어떤 엄청난 책이 나를 바꿔 줄까? 앞으로 읽을 책들이 기대된다.  





2018년에 읽은 책들 (별이나 숫자는 5점을 만점으로 한 개인적인 별점이에요.)

1.            How to spot great deals and finance them*

2.            Unofficial guide to real estate investing *****

3.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4.            타인의 심리학*

5.            유쾌한 하녀 마리사***

6.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7.            문명은 부산물이다**

8.            나의삼촌 브루스리1***

9.            나의삼촌 브루스리2***

10.         기초 심리학*

11.         재밌어서 잠못드는 세계사****

12.         Am I being too subtle?****

13.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14.         Cicero 의무론***

15.         싸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지낸다**

16.         Benjamin Franklin autobiography ***

17.         Man box**

18.         Prisoner of geography *****

19.         The art of the good life 3.5

20.         Math weapon of destruction 3

21.         설득의 심리학 4

22.         Lee Kwan Yew One man’s view of the world 5

23.         Poor Charlie’s Almanac 5

24.         Mans search for meaning ****

25.         Cicero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26.         Cosmos *****

27.         아홉번째 파도 **

28.         Momo 4.5

29.         뭇 산들의 꼭대기 4

30.         김약국의 딸들 3.5

31.         Hillbilly Elegy 4.5

32.         미나 *

33.         Sapiens 5

34.         달콤한 나의 도시 3

35.         고령화 쇼크 2

36.         Loud and incredibly close 3.5

37.         집값과 땅의 경제학 2

38.         2007 제테크 트렌드 3

39.         단어의 사생활 2

40.         일본에서 배우는 고령화 시대의 국토 주택정책 1

41.         개밥바라기 별 2


2019년에 읽은 책들

1.            Moby dick 3

2.            The power of now 4

3.            금융투기의 역사 3

4.            Shopclass as soulcraft 2

5.            The power of habit 5

6.            The Power of influence 4

7.            The selfish gene 4

8.            Dollars and senses 4.5

9.            When breath becomes air 2

10.         위장자 1

11.         위장자 2 4

12.         Never split the difference 5

13.         The manual 4

14.         How to become a rainmaker 4

15.         90년생이 온다 4

16.         Human errors 4

17.         이기는 대화 3.5

18.         탈무드 새벽에 있는 유대인 특강 2

19.         Mindfulness in plain english 3.5

20.         The lessons from history 3

21.         It’s not what it looks like 2

22.         Can’t hurt me 3

23.         탁신 1

24.         Pachinko 5

25.         Being mortal 3.5

26.         The social animal 4.5

27.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 2

28.         Evicted 4.5

29.         Boom 4

30.         How asia works 2

31.         The art of execution 3.5

32.         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4

33.         Educated 5

34.         Sex drugs and cocoa puffs 2

35.         Quiet 4

36.         Range 3

37.         Talking to strangers 5



2020년에 읽은 책들

1.            Whistling Vivaldi 3.5

2.            The man who solved the market 3.5

3.            Where the crowdads sing 3

4.            2020 트렌드 3.5

5.            읽으면 살빠지는 이상한 책 5

6.            습관성형

7.            Why we sleep 4

8.            포노 사피엔스4

9.            모순 5

매거진의 이전글 길거리에서 크게 한번 노래를 불러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