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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Feb 07. 2020

길거리에서 크게 한번 노래를 불러보았다

노래를 못 하지만 괜찮아!

‘나 다움’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 나름 공을 들여 만들어진 자아의 형태이지만, 나는 ‘나 다움’에 매여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할 때가 있다. 공연 중 방청객 중에 자진해서 나올 사람을 찾는다거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 무언갈 물어봐야 할 상황이 생긴다거나 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그건 나다운 행동이 아니야. 나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다운 것이 뭔데? 사실은 무대에 한번 나가보고도 싶은 마음이 있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을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것이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거든, 뭐든 간에), 그 마음 또한 ‘나’에게서 나온 마음이면서도, ‘나답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무시하곤 했다.  혹시 ‘그건 나 다운 행동이 아니야’ 라는 말로 용기 내지 않을 핑계를 대는 건가? 용기 내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는데 두려워서 지레 겁먹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내가 무서워하는 한 가지를 정해서 해보기로 했다. 나는 평소에 남들 앞에 나서거나 주목받는 상황에 놓이면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도록 길거리에서 한번 크게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참고로 나는 노래를 잘 못 부른다.) 사람들이 비웃겠지, 이상하게 쳐다보겠지, 그런 시선을 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무섭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첼시의 붐비는 길거리로 나갔다. 내가 가사를 아는 아무 노래를 (Alicia Keys의 If I ain’t got you 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큰소리로 불렀다. 한곡을 쭉 불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리를 걸어 다니며 한번 더 불렀다. 평범하게 생긴,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니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 번씩 쳐다봤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경멸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 감정 없는 눈빛을 줬다 이내 늘 그랬듯 일초만에 눈길을 거두고 제 갈길을 갔다. 그나마 몇 초의 눈길을 주지도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라? 내가 ‘이상 행동’을 해도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네? 비웃지도 않고 경멸하지 않네? 사람들은 내가 뭘 하던 별로 나한테 관심이 없네? 란걸 알고 나니 뭔가 속 안에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풀어졌다.  그때부터 두려웠던 일들을 하는게 쉬워졌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모임에 나간다거나, 새로운 곳에서 발표를 자청해서 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한다. 그런 시도들을 할 때 내가 막연히 두려워했던 것처럼 비웃음을 당한다거나 하는 무서운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하게 여러 가지를 배워가는 일들이 많았다. ‘나 다움’을 정의하는 건 ‘나답지 않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는 것 이기도 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볼 때마다 내가 전에 정해놓았던 ‘나 다움’의 경계는 사라지고 ‘내가 할 수 있고, 해본 것들’의 범주가 넓어졌다.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뉴욕은 참 매력적인 도시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뉴욕의 특징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 못할 것이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한다 해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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