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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Jul 02. 2022

엄마가 된 지 100일이 되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넘었다. 막 태어나서 울고 있는 아기를 가슴 위에 올려놓았을 때 기분이 정말 얼떨떨했다.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걸 알고만 있는 것과 막상 그 생명이 밖으로 나와서 나를 마주하는 건 정말 달랐다. 당황스러웠다. 막 태어난 아기는 개구리 같기도 하고, 스머프 같기도 했다. 


아기는 2.1킬로로 정말 작게 태어났다. 그야말로 주먹만 한 얼굴에 눈코 입이 다 있는 게 신기했다. 우리 강아지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줄 알았는데 아기가 태어나자 강아지는 뒷전이 되었다. 강아지를 볼 때 느꼈던 가슴이 뭉클하게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아기로 더 강하게 옮겨갔다. 강아지는 오히려 죽을 때까지 끝까지 내가 책임질 존재라 걱정이 안 되고 마음이 편하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가 무조건 책임지면 되니까. 반면 아기는 내가 죽어서도 자립해서 세상을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의 무게가 더 크다. 그러느라 혼자서도 잘 지내는 강아지는 어쩔 수 없이 뒷전이 되고 말았다. 내가 아기에게 달려가서 아기를 케어할 때 강아지는 구슬픈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강아지에게는 내가 전부인데, 나에겐 소중한 것들이 많아서 강아지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사랑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 


아기는 너무너무 손이 많이 간다. 밥도 혼자 못 먹고, 혼자 잠들지도 못하고, 뱃속에 차는 가스도 혼재 배출하지 못하고, 똥 쌀 때도 배가 아파서 울고, 밤잠도 3~4시간 이상 못 잔다. 아기를 케어하느라 내 시간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아기 위주로 돌아가고 한시도 아기에게 눈을 뗄 수 없고 잠도 못 잔다. 


모성애는 과학인 것 같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들어 본 게 처음인데도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하고 내 안의 모든 안테나가 아기를 위해 곤두서 있다. 그나마의 쪽잠도 깊게 자지 못하고 아기에게서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깨서 달려간다. 아마 아기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 귀찮음과 힘듦을 이겨낼 수 있도록 자연이 모성을 강하게 만들었나 보다. 그야말로 내 머릿속에는 아기 말고는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불과 100일여 만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기를 낳으면 남편이 육아 동지로 느껴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예전에는 '남편과 나’가 최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아기가 최우선이고, 아기를 위해 남편과 내가 존재하는 느낌이다. (남편은 아기는 또 낳으면 되니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아기를 최우선으로 두는 생각을 고치고 나와 남편을 최우선으로 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식에게 집착하거나 내 연장선으로 여기기보다는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며 친구같이 대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자식에게 너무 인생을 내던지며 집착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인생을 내던지고 싶은 마음은 강하게 든다. 자연이 '엄마'라는 존재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여자는 평범하지만 엄마는 위대해진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큰다. 일주일이 다르게 얼굴이 달라진다. 처음의 쭈굴 한 개구리 같은 신생아 모습은 전혀 없고 100일이 지난 지금은 동그랗고 뽀얗고 귀여운 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전에는 할 수 없던 것들을 해 낸다. 처음엔 눈만 껌뻑거리던 아기가 이제는 방긋방긋 웃고, 까르르 웃는다. 표정이 다양해지고 손발을 쓰기 시작하고,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너무 신기하고 아기에 대한 사랑도 나날이 깊어진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정신없고 힘들면서도 지금 이 순간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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