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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pr 04. 2020

뉴욕에서 방 구하기가 부동산 투자의 시작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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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동산에 정말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뉴욕에서 아파트를 보러 다니면서부터 다. 어쩌다 보니 대학원을 졸업하기 2달 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졸업 후에 살 원룸을 구해야 했다. 미국 부동산 웹사이트 Streeteasy, Trulia, Zillow 등을 들여다보다가 가격이 맞고 마음에 드는 방이 있으면 중개인에게 연락해서 퇴근 후에 보러 가곤 했다. 


나는 어떤 것들에 있어서는 아주 까다롭게 굴기도 해서인지 마음에 드는 방이 단박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이럴 때에는 예산을 늘려야 하는 게 맞지만 혹시라도 기적적으로 마음에 딱 드는 방을 마음에 딱 드는 가격으로 찾게 될까 봐 대학원 수업과 졸업논문과 직장을 병행하면서도 퇴근 후에 꼬박꼬박 집을 보러 다녔다. (뉴욕 아파트 가격은 아주 합리적으로 측정돼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은 예산을 늘려서 들어갔다.) 


비슷한 가격대라도 어떤 원룸들은 고급 아파트에 있는 대신 크기가 작았고, 어떤 원룸들은 면적이 넓은 대신 낡았었다. 그 밖에도 모든 방들은 위치 (교통), 면적, 아파트 시설 (체육관, 도어맨, 등), 엘리베이터 유무, 세탁기와 건조기 유무, 리모델링 유무, 햇빛 유무 등 전부 달랐고, 대도시에서 집을 구하는 누구나 그렇듯 내 예산으로 원하는 모든 요소들을 갖출 수는 없어서 나한테 중요한 요소들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덜 중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했다. 대도시에서 집 구하기는 원하는 걸 얻기보다는 포기의 미학에 더 가깝다. 나는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조건에 맞지 않는 집을 보기도 했다. 요소들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는 게 흥미로워서 머릿속에서 회귀분석을 하면서 집 보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방세 = b + b1면적 + b2세탁기 + b3리모델링 +b4위치... 나는 통계학 전공을 했다.) 어느 순간 나에게 퇴근 후 집을 보는 것은 하나의 취미생활이 되어 있었다. 


한 15개 정도 방을 보고 났을 때 그때 만난 중개인이 지금까지 몇 개의 방을 봤냐고 물었을 때, 한 15개 정도 봤다고 하니 중개인의 얼굴이 확 어두워지면서 서둘러 나와 작별했었는데, 나중에 나도 중개인 자격증을 따고 나서 알고 보니 보통 3개 정도의 방을 보고 그중 하나로 결정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5배가 넘는 방을 봤던 나는 정말 진상 중에서도 진상이었던 것이다. 다행인 건 한 명의 중개인이 아니라 방을 볼 때마다 다른 중개인을 만났기 때문에 한 사람의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시간을 조금씩 낭비한 것에 약간의 위안을 느끼고 싶다. 


방을 구하고 난 후에도 집 보는 게 재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딘가 여행을 가면 이런 곳은 방세나 집값이 얼마나 할까?라는 의문을 품고 인터넷에 찾아봤고, 주말에 뉴욕 안에서도 안 가봤던 동네들을 가보면서 탐색했다. 갈 때는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면서 그 동네로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내가 사는 맨해튼 도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교통시간을 가늠해보기에도 대중교통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동네는 도심이거나 부촌은 아니지만 경제가 활성화되어있는 동네들이다. 예를 들어 거리와 가게들에 사람들이 많고,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데 아주 깨끗하거나 고급은 아닌 그런 동네들이다. (미국의 부촌들에는 대다수가 백인이거나 동아시아인이다.) 그런 동네에 가면 흥미로운 가게들을 볼 수 있는데 맨해튼에선 볼 수 없는 가게들이었다. 왜냐하면 도심이나 부촌은 자릿세가 비싸서 비싼 자릿세를 낼 수 있는 큰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 스타벅스 등만이 들어올 수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진부하다고 느꼈다. 아직 젠트리 파이 되지 않은 동네를 거닐면서 안 먹어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기도 하고 신기한 식료품을 사보기도 하고 흥미로운 커피숍이나 디저트 가게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이 동네에 살면서 이 삶을 계속 즐기려면 얼마의 집세를 내거나 얼마 하는 집을 사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부동산 투자 분석의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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