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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여행기 #03

격렬했던 전투에 흔적

by 노아

아침에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니 내가 잠들었던 이후 공습경보가 5개나 발령되었었다. 무인기가 대규모로 키이우를 공습했던 것. 30시간 넘는 이동 시간에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내가 이 경보 기록을 보고 있다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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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나갈 채비를 했다. 집 앞에 포장마차식? 카페를 가 커피를 마시며 북쪽 전선에 가까운 마을로 이동하기 위한 경로를 구상했다. 안전한 지도 다시 한번 체크했지만, 정보가 많이는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미녀에 나라로 유명하다. 두 번째 날부터 다시 한번 느꼈다. 이 누나는 내게 커피를 타주고, 내가 다음 이 동지로 갈 수 있게끔 많이 도와주셨다. 마음도 예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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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북쪽 전선 쪽은 거리가 그래도 좀 있어 차량으로 이동했다. 물론, 차량 30분 거리 밖에 되지 않지만, 동구권 날씨가 워낙 추워야 말이다. 택시비는 6천 원 정도 냈던 것 같다.


내가 오늘 가는 지역은 호스토멜, 부차, 이르핀이다. (하기 사진 별첨)


호스토멜은 키이우에 가장 인접한 공항이 있는 곳으로 키이우 점령에 꼭 필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특히 러시아군이 전쟁 직후 가장 먼저 공항을 점거하려 했던 시도가 있을 정도로 민감한 전투 지역이었다.


부차는 키이우와 호스토멜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키이우를 가는 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 러시아가 굉장히 공격적인 시도 끝에 점령에 성공했고, 빠르게 전쟁을 끝내려는 목적인지 피난 가지 않은 마을 주민들을 대규모 학살했던 전쟁 범죄에 피해 도시였다. 그 유명한 부차 대학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수많은 국제 조약으로 인해 전쟁 중인 국가들 간에도 21세기에는 민간인은 의도해서 죽이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곳에서는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르핀은 우리나라 6.25 전쟁에 낙동과 전투 전선과 같은 전쟁 최대에 격전지였다. 이르핀이 러시아군에게 점령당하면 키이우는 사실상 점령된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이를 악물며 전 국민이 지켜낸 최대 격전지이다. (*벨라루스, 러시아 접경지에서 키이우까지 한 번에 가는 마지막 접경지) 국내에서 유명한 군사 전문가 이근 대위도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아무래도 수도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격전지이다 보니 특수부대가 많이 투입된 작전 지다.


2025-01-20 10;45;59.PNG 퀄리티가 낮아도 이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요약하면 위에서 진격하는 러시아를 막기 위한 최대 격전지인 3곳이다. 벨라루스와 러시아 국경지대와 가깝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습이 동남부 전선을 제외하면 중심지보다는 조금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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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내리니 이곳이었다. 마을은 상당 부분 복구되었지만, 아직 이런 곳이 엄청나게 많았다. 키이우 중심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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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속 중심 도로 옆 건물 사이드만 제외하면 모든 곳이 포격에 흔적이 아직 여실히 남아있다. 도로에 가까운 건물만 멀쩡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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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단독 주택이 모여있는 마을이었는데, 이렇게 박격포를 맞았는지 지붕부터 부서진 집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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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주택은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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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지붕부터 부서져있다. CQC(근접전투) 작전이 상당했을 거라 대부분 포격으로 생략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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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집에 실내는 이렇다. 탄흔이 많은 걸 보니 CQC 작전 중 포격된 게 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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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 보니 이런 민간 차량이 파괴된 게 모여있는 곳도 보였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차량 묘지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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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전투에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다.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무섭게 총격을 가한 흔적이 매우 많았다. 이르핀에 모든 주택 담장과 벽에는 이런 탄흔이 매우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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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촬영하다가 큰 일 날뻔했다. 대부분 집에는 개를 많이 길렀는지, 마당마다 개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닌 두세 마리씩 있었다. 무섭게 짖으며 쫓아왔고 파괴된 집 안에서 주운 긴 칼로 개를 못 오게 막으며 다녔다. 물릴 뻔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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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핀에 위치한 대학교 정문겸 본관인데 뒤로 건물이 크게 늘어져있다. 아마 이 안에서 오랜 시간 군인들이 작전을 펼쳤던 것 같다. 박격포, 총알 탄흔 정도는 우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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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와 벽돌로 구조된 건물은 지붕은 아예 없어져있고, 모든 벽과 층을 구분하는 바닥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미사일과 같은 고 탄두를 통한 폭격과 진압 작전이 격렬하게 벌어진 것 같았다. 넓은 대학교 건물이다 보니 주요 거점으로 쓰임새를 다하다 생을 마감한 것 같다.


이 건물은 모든 출입구가 막혀있었는데, 30분 정도 들어가기 위해 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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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가로수 나무들은 대부분 이런 탄흔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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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도로가 키이우로 이어진다. 그래서 긴 도로를 좌우로 두고 양 진영이 격렬한 전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도로를 낀 모든 담장과 울타리는 총탄 자국이 살벌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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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투가 있었길래 이런 탄흔이 남는 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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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흔으로 무수히 찢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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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음으로 가장 컸던 건물. 모든 공간이 파괴되어 있다. 실내에 계단, 층을 구분하는 바닥 등도 상당 부분 사라져 있었다. 이 또한 거점으로 사용했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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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병을 치료하던 자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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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구석엔 쓰다만 주사기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안에 얼어있는 피도 보이는 걸로 보아 이미 사용했던 것 같다. 이곳엔 유리로 된 주사 약제병도 깨진 채 많이 보였는데, 검색해 보니 북한에서 쓰는 약이었다. 아마 러시아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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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창가로 보이는 이르핀과 부차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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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동안에도 계속 공습경보가 울렸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경보가 계속 울렸다. 주말이 끝난 평일이라 그런지 무섭게 공습이 시작되었다. 아마 주말엔 러시아 군인들도 쉬는 것 같다. 평일이 시작되니 하루 종일 열심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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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많은 폐허를 둘러보며 놀랐던 것은, 금속도 포격 앞엔 장사가 없다는 것이다. 금속 재질 물건이나 건축 자재를 발로 밟으면 가루가 된다... 폭격에 엄청난 고열로 강제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해가 지기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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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일인 월요일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 숙소로 돌아온 저녁에는 한국 시간으로는 이른 새벽 오전이다. 업무를 미리 해둔다. 저녁부터 자기 전까지 해둬야. 내일 또 돌아다닐 수 있다. 돈이 없으니 이렇게 일을 해서 여행을 다녀야 한다.


참고로 작년 이집트에 갔을 때는 노트북으로 일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는데, 10만 원짜리 보조 모니터를 써보니 너무 편했다. 집에서 일하는 것 같은 느낌. 여행 다니며 일하는 것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이제는.


여담이지만 시차도 생각보다 편했다. 여행지에서 혼자 해가 진 뒤에는 할 게 없다 보니 5-6시쯤이면 잤다. 아물 늦게 자도 8시면 잤던 거 같다. 이때 자면 새벽 2-4시에 일어나는데, 한국 시간으로는 한창 업무 시간 때이다. 맞춰서 일하기 좋다. 그리고 현지 시간으로 해뜨기 시작하면 한국 시간으론 업무 종료 시간이 된다. 생각보다 시차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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