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자기 인식
오전에 스타벅스를 일찍 가게 되면, 한적한 분위기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분명 나는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점점 사람이 없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어렸을 때 자주 다녔던 영화관에서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조조영화를 보러 다니던 시절에 극장 안에 나와 친구밖에 없으면 그게 또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가는 길 역시 좋아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시장 골목과 그 새벽 공기 냄새가 괜히 좋았다.
그렇게 자란 나는 여전히 사람이 많아야 하는 장소에서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인간이 되었다. 나 같은 인간이 걱정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 걱정이 되는 점은 사람이 많아야 하는 곳에는 역시 사람이 많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불필요했다. 역시 스타벅스는 스타벅스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심지어 평일 아침이었는데도 말이다. 역시 남 걱정은 사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나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충격이었다. 나는 분명 복작복작한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스타벅스에 사람이 몰리니, 흥이 팍 식어버렸다. 못된 심보가 아닐 수 없다.
20살이 막 되고 나서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거리를 배회하다가 겨우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그런 일상을 좋아했다. 그렇게 정말 매일을 보냈던 것 같다. 어찌어찌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다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1시간이건 2시간이건 지하철을 타고 유명한 대학가를 배회했었다.
이러한 사실이 있다 보니, 오랫동안 사실은 난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한다고 어렴풋이 생각한 적이 꽤 있다. 그런데 막상 스타벅스에 와보니, 사람이 없는 이 한적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부터 그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백 룸"이라는 괴담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뎠는데, 무한히 이어지는 비슷한 규격의 방이 늘어선 공간에 떨어진다는 괴담이었다. 그것과 관련되어 게임도 만들어지고 유튜버들이 이것을 플레이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솔직히 괴물도 나오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무척이나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는 막상 현실이 되면 그런 분위기를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것 같진 않다. 고등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다녔다. 밤이 되면 학교 건물의 1층과 2층 정도만 불이 켜지고 위의 층들은 모두 소등하였다. 혹여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이 있다면 그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서 물건을 가지고 와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두컴컴한 복도가 좋았다. 어슴푸레 보이는 복도 창문의 풍경도 멋졌고, 비상등에서 뿜어내는 청백색의 빛깔이 고요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특히 교실에서 보이는 중정과 그 맞은편에 있는 교실 또한 멋지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그 괴담의 괴물과 효과음을 무서워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나는 고독하게 어딘가를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스타벅스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사실은 사람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술을 좋아했을 뿐이다. 지금도 사실, 기회만 된다면 와이프 눈치를 살살 보다가 술을 한 병 꺼내오곤 한다. 물론 눈치를 본다는 것은 순전히 나의 표현으로 와이프의 눈에는 그저 술을 자주 마시고 싶어 하고 은근슬쩍 술을 저녁상에 끼어 넣는 남편으로 보일 것이다.
하여간, 저녁에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을 좋아했을 뿐, 사람이 복작복작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아마 나를 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와이프가 보기에 나는 애초에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심 우기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나는 사람과 사귀길 좋아하고, 사교성이 뛰어난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런 인간이 언제나 혼자서 저녁거리를 만들어오면 빔프로젝터를 켜고, 조용히 맥주를 들이켜니, 아내 입장에선 어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사실, 사람이 많은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인간인 것을. 내심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잘못된 인식도 깔끔하게 밀어내었다.
이렇게 나를 잘 알게 되어 좋은 점이 뭘까.
글쎄. 그저 재미있을 뿐이다. 내가 스스로 했던 멍청한 자기 인식이 웃기고 어이가 없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재미가 있었으니, 그리고 혹시 누군가가 물어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누가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보다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술이 좋지 사람이 좋은 게 아니에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겠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 한심한 인간이 되어 버리긴 했다.
뭐, 상관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