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술 구할 수 있을까요?
이슬람.
여러 사회적 이슈 때문일까? 이슬람 하면 나는 살짝 '무섭다' '어렵다'라는 생각부터 스쳐 지나갔다. 난 가톨릭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밥 먹기 전 기도도 할까 말까 하는데 이곳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모든 것을 멈추고 기도를 한다. 인도네시아에 적응한다는 것은 이슬람 종교에 적응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살면서 느낀 점은 무엇일까?
나와 남편은 육퇴 후, 함께 넷플릭스를 보며 한잔씩 마시는 것을 즐겨했다. 이곳에 오면 정말 술 찾고, 사는 것이 어려울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맥주사기도 편했고 마트 옆에는 와인샵이 항상 있었다. 주류세가 비싸다 보니 수입맥주, 와인 가격이 저렴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쉬우면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만든 맥주 '빈 땅'도 맥주가 생각날 때 마시면 아쉬움을 달래주곤 했다. 한국인 입맛에 빈 땅이 살짝 물같이 느껴진다면 '발리할리'를 추천한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차와 마시는 음료의 종류가 정말 많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음주운전'이 없다는 것!!
인도네시아 대부분은 이슬람이지만, 유명한 휴양지 발리는 '힌두교'이다. 이슬람은 돼지를 먹지 않고 소를 먹지만, 힌두교는 돼지를 먹고 소를 먹지 않는다. 다행히도, 발리에서 키운 돼지고기를 자카르타에서 맛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로 돼지는 'babi(바비)'라고 하는데, 바비라는 말도 입에 올리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겨서 B2(베두아. 즉 B가 두 개 들어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생돼지고기처럼 육즙 가득한 돼지고기는 아니더라도, 김치찌개에 들어갈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래도 나는 한국에 가서 한우보다도, 집 앞 삼겹살집에서 구워 먹는 돼지고기 첫 점에 감동에 쓰러지곤 한다.
새벽 4시, 새벽 6시, 오후 12시, 오후 3시, 저녁 6시.
이렇게 기도시간이 있다. 딱 정시에 맞춰서 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사정상 제시간에 기도가 어려울 때는 기도해야 하는 시간 전후로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기사 아저씨가 운전을 하는 와중에 12시가 되면, 차를 세워서 기도를 한다? 그렇지 않다. 아저씨는 조금 있다가 기도하시기도 하고 내가 몇 시에 출발한다고 하면 미리 기도를 하고 오신다. 하지만 나는 웬만하면 기사 아저씨기의 기도시간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가령 12시에 출발하고 싶어도 12:10-15쯤 출발한다던지 말이다. 특히 금요일 기도가 중요한데, 그때 남자들은 약 11:30부터 1시까지 기도시간을 갖는다. 금요일 기도시간을 확보해 드리는 게 외국인으로서 이슬람을 믿는 인도네시아인을 가장 크게 배려해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시간마다 여기저기 확성기에서 퍼져 나오는 기도소리가 무섭기도 했다. 이제 이곳에서 사는 것이 일상이 된 나는 새벽 4시에 기도소리에 깨지도 않고, 오후 기도소리에 익숙해졌다. 한 한국인엄마는 기도소리가 나올 때마다 '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구나' 생각하니 기도소리가 편안하게 들린다고 했다.
이슬람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 '금식'기간이다. 해가 떠있는 동안 물조차도 마시지 않는다. 해가지고 6시 이후부터 물을 마시고, 먹을 수 있다. 라마단기간은 르바란 한 달 전부터 시작하는데, 금식을 갑자기 시작하면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몇 주 전부터 조금씩 준비를 하기도 한다. 같이 살고 있는 가정부 아줌마, 기사아저씨의 일상생활이 가능하실까? 하고 보면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우선 해뜨기 전에 미리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다시 자고, 6시 이후부터 저녁을 매우 푸짐하게 먹어서 라마단 기간이 끝났는데 오히려 살이 쪄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 뿌아사 기간에 외국인인 우리는 저녁외식을 나가지 않는다. 저녁 5시경부터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금식이 끝나면 6시 이후부터 다들 외식을 나가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르바란을 앞두고는 우리나라 명절처럼 기차나 버스 티켓을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기 때문에 르바란 연휴 일주일 전부터 고향을 찾아간다. 그렇게 약 2주의 연휴를 갖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다. 뿌아사부터 르바란 까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르바란에는 월급 보너스가 가장 큰 날이기 때문에 모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정말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가량 우리 집 기사아저씨와, 가정부 아줌마를 보자면, 한 달 치 월급을 더 받는다.
이슬람도 이슬람 나름이겠지만,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조금은 자유로운 것처럼 느껴진다. 히잡도 개인의 선택에 따라 쓰는 사람도 있고, 안 쓰는 사람도 있다. 우리 집 가정부 아줌마는 이슬람이지만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기도시간에 쓰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배우는 줌바 선생님은 히잡을 쓰고 레깅스를 입고 열심히 줌바를 가르쳐 주신다. 가끔 가는 요가스튜디오 요가선생님도 히잡을 쓰고 있다. 히잡을 쓰고 있을 뿐 우리가 사는 일상을 모두 다 함께 즐기고 있다. 그리고 1년에 있는 여러 가지 다채로운 휴일(할로윈, 크리스마스, 구정)을 다 즐긴다. 우리 아이들도 만 5세부터 히잡 쓴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고 해서 그런지 '엄마 저건 왜 써?'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에 살며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역시 경험해 보기 전에 나의 판단대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