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임 4개월. 무쓸모에서 유쓸모 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한국에 와서는 아직 내가 집에 정착하지 못했으니까, 짐 정리하느냐고, 그리고 이제 짐 정리하고 좀 긴장 풀고 쉴만하니 늘어지게 쉬어야지 하고 쉬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늘어지게 쉬는 것도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도 다 합당하다 생각했고 정착 혹은 정리로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돼서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식세기에서 그릇 꺼내는 사람, 세탁기 때되면 돌리는 사람, 청소기 돌리는 사람, 아이들 학원 픽업 드롭 하는 사람,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서 정리하는 사람, 이런 거 말고 나도 필요가 있고 그 필요를 통해 경제적인 활동도 하고 싶다. 누가 내 이름 불러주며 필요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도 '엄마'로, '아내' 로만 존재한다고 나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내 이름을 불러주며 밥 먹자, 운동하자 하고 외국엄마들과 만나서 교류도 하고 의미 있던 시간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도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글을 쓰고 책을 출판했었다.( 나는 좀 현 상황에 만족 못하고 무언가 계속 탐닉하기는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야 그때 좋았다는 걸 알고 있네;;)
워킹맘들도 휴직을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 둘을 알아서 하라고 하고 돈을 벌러 나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돈을 버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더라. 아직 핸드폰을 쥐어주고 알아서 학원 가고 하라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 초등학교3학년 둥이들을 올해는 온전히 잘 봐주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굳이 내손이 안 가도 스스로 알아서 한다고 하는 선배엄마들의 말을 듣고 지금은 서둘러 무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단순하다. 글쓰기와 책 읽기 그리고 주변은 아주 단조롭게 하기로 했다. 집 주변에 도서관이 있으니 맘껏 책을 빌려서 읽고 내면을 쌓자. 그리고 글쓰기만큼 돈은 들지 않지만 내 생각이 정리되고 기록이 되는 아주가치 있는 활동이 있을까? 집은 짐을 더더 줄이고 단조롭게 하고 자주자주 구석구석 들여봐 주기로 했다. 그러면 샀는데 또 산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단조롭지만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활동과 행동 하나씩만 해도 꽤 괜찮다고 여겨진다. 인도네시아에서 있을 때도 영어공부, 운동 등으로 소소한 성취를 통해 건강하게 그 시간들을 보내오지 않았던가?
그곳에 적응하는 것, 가족들을 잘 지내게 하는 것, 한국으로 잘 돌아오는 것, 다시 잘 정착하는 것 등 과정을 쭉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주재원 와이프'라는 직함으로 취직했었구나 생각이 든다. 주재원 와이프로 외국에 나가게 되면 다들 편리했던 한국생활을 많이 그리워하고 아이들 도시락을 챙기며 한국의 급식을 그리워한다. 한국보다는 심심한 주변환경에, 한국보다 느린 속도의 생활 서비스에 힘들어한다. 그리고 한국을 그리워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그 시기는 평생이 아니라 딱 4년, 혹은 2년 등 정해진 시간이다. 한국에서 누리던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는 탈출하고 싶다며 한국은 미래가 없다고 이민을 꿈꾸지만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임을 깨닫는 시간일 수 있다. 다 모든 경험의 시간은 '그냥'이 없다. 난 지나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없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