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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VS 김밥

대통령의 한끼가 보여주려는 것.

by Kifeel co

거의 20년 전, 미학 수업에서 들었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카메라라는 발명품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사진이 기록 매체로 자리 잡던 시기, 한 살인사건 현장이 사진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단 한 장의 사진이 A라는 인물을 유죄에서 무죄로 바꾸어 놓았다. 교수님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은 이미지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호학 수업에서는 정치인들이 회담에 나설 때 선택하는 복식, 옷의 색깔, 브로치 하나에도 모두 의미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늘날은 글보다 이미지가 더 강력한 시대다. 나 역시 어느새 긴 설명보다 한 장의 이미지에 더 쉽게 끌릴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별 의심 없이 ‘사실’이라 믿곤 한다. 인스타그램이 처음 유행하던 시절, 내 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며 ‘어쩜 저렇게 예쁘게, 깔끔하게 살까?’ 하고 감탄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막상 사진 찍는 과정을 목격했을 때는 놀랐다. 그 장면을 얻기 위해 상황은 연출되었고, 사진은 사실인 듯 사실이 아니었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정치에서 한 장의 사진은 종종 긴 연설보다 강력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일하는 모습이 공개되자 국민들은 환호했다.


“드디어 밥 먹을 시간도 아껴 일하는 대통령이 나왔다”
“역대 대통령과는 다르다”는 감탄도 나왔다. “대통령도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이제 진짜 일을 하는 대통령이 나왔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이 전부일까? 우리는 모른다. 그날 저녁 대통령이 실제로는 소고기를 구워 먹었을지도.

중요한 건, ‘김밥을 먹으며 일하는 모습’을 취임 직후 며칠이 안되어 전략적으로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분명 의도를 가진 메시지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전용기 안에서 맥도널드를 먹는 모습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웰빙과 고급 요리를 즐길 것 같은 대통령이 패스트푸드를 먹는다니!”라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서민 코스프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이처럼 정치인에게 밥 한 끼조차 정치적 언어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이 놓인 맥락이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미드 *〈외교관(The Diplomat)〉*을 떠올린다. 공직에서 물러나려던 주인공이 오히려 대통령 후보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물론 허구이지만, 그 드라마는 정치가 얼마나 철저하게 계산된 쇼인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뉴스와 매체를 통해 걸러지고 편집된 정치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언제나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 장면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계획한 ‘메시지’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잘 팔리는 건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플루언서의 화려한 일상도, 연예인의 빛나는 무대도, 정치인의 하루 역시 ‘연출된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통령이 김밥을 먹든, 햄버거를 먹든, 결국 중요한 건 메뉴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사진이 왜, 지금, 우리 앞에 놓였는가다.


대통령의 임기 내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감탄은 잠시 해도 좋지만, 믿음은 아껴두는 것. 사진 한 장에 박수치기 전에 질문을 갖여야 한다. 우리는 그 사진을 그냥 삼키지 말고, 곱씹어 보자. 정치인의 사진뿐만 아니라 모든 이미지를 비평가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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