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와이프 3년차. 실행력 갑에서 을로...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이 생기는 것만큼 인스타의 아이디가 늘어갔다. 그중에 가장 오래된인스타 계정은 처음에 만들어서 내 사소한 하루 일상을 올리는 계정이었다. 그 외에 스타트업을 시작하며 만들었던 플랫폼 계정, 아이들 육아로 무언가 해보고 싶어서 열었던 계정, 생각을 담아 글로 써보겠다고 만든 계정 등 그렇게 잠깐 하고 닫았던 계정들이 있다.
현재 내가 브런치 아이디로 쓰는 Kifeel.co는 내가 생각하고 이것이 맞다! 옳다! 고 생각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을 잘하는 행동파여서 그래 나는 하고 싶은 건 꼭 하고야 만다! 기필코! 그런 의미로 만든 아이디였다.
그렇게 실행력 갑이었던 나는 과거형이 되었다. 현재의 나는 매우 조심성 있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실행하기 전에 백가지 생각만 하다가 그만두는 꽤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제 막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환경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기분으로 나는 뭐든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렇게 뭐든 해보겠다고 열정이 가득했던 나는, 갱년기가 오면 퍽이나 우울감이 심할 것 같다며 눈물만 늘어가는 마흔 즈음의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지?
1. 개도국에 살고 있다.
한국의 물가보다 조금 저렴한 이곳에서 한잔의 잘 만들어진 라테를 마실 기회가 많다. 한국에서는 커피 한잔을 나에게 선물로 주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럴싸한 프렌치 레스토랑을 갈 수 도 있다. 저렴한 인건비로 개인기사가 있고, 집안일을 해주는 가정부가 있으며, 남편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많은다고, 뇨냐 라이프(사모님 라이프)를 조금 살다 보면 나는 내가 무엇을 해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금세 사라진다.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흐릿해져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던가...)
2. 나를 감춰야 잘 지낼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엄마'로 사람들 앞에 섰을 때가 안전하다. 내가 맺는 사회관계는 아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엄마들과 대화내용은 아이 혹은 학교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지금 A라는 사람과 말한 것이 하루정도면 모두 아는 내용처럼 금세 퍼지기도 하고, 서로서로 다 아는 좁은 한인사회다 보니 행동과 말에 다들 조심한다. '나 다운' 것 보다 '00의 엄마'다운 모습으로 살다 보니 점점 나의 본래 모습이 흐릿해졌다.
3. 타국에 사는 거 자체가 쉽지 않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도전 같은 일상이다. 집 밖을 나가는 순간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의 세 가지 언어로 나의 뇌는 바쁘다. 처음에 왔을 때는 잠시 여행 같고 이런 이국적인 것이 좋았던 시간도 있었다. 인생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타국에 살다 보면 그런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은 점점 뒤로 밀어 두고, '안전함' 더 찾게 되는 거 같다. 괜히 새로운 거 하지 말고 주어진 거나 잘하고 가족들 건강만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점점 굳혀간다.
4. 내 꿈을 말할 곳이 없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없다.
한국에 있을 때는 영감을 받을 곳이 너무 많았다. 내가 이런저런 아이디어나, 관심사에 대해말하면 같이 맞장구 쳐주고 나의 대화에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그런 대화로 몇 시간씩 이야기할 대상이 없다. 아이들 방학 때 한국에 가면 ' 아 이번에 인도네시아 돌아가면 진짜 이번에는 꼭 해야지, 안 하면 그게 사람이냐!' 하면서 마음을 먹고 오지만, 한두 달 후면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Kifeel.co?
이런 나 자신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헛헛하다. 이렇게 타국에서 하루를 잘 보낸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칭한해도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오늘 왜 영어공부는 안 했어? 왜 인도네시아어 공부는 안 했어? 핸드폰을 너무 많이 봤다. 책은 읽었니? 침대에 누워 티비보는 시간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하면서 하지 못한 것만 켜켜이 쌓여서 더 이상 밀어낼 수 없는 수준의 무게이다. 이런 기분은 내가 작은 성취를 하나씩 이루어 나가면서 가벼워지고 싶다. 다시 Kifeel.co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