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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feel co Oct 08. 2023

'촬영' 공해

저는 안 찍히고 싶어요

인스타를 하고 나서는, 사진 찍기는 나의 추억 기록용이 아닌 '남에게 보일' 사진이 되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면 '이거 찍어서 올려야겠다'가 머릿속을 본능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최근 '도둑맞는 집중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인스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얼마나 철저하게 조정당하고 나의 삶을 그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바뀌었는지 알고 나서는 그들의 알고리듬과 컨트롤에서 뛰쳐나오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이번 페낭여행길에 나서면서 내가 가장 먼저 나와 약속한 것은 SNS를 덜하기, 그리고 '보여주기용' 사진 찍지 않기였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는 동안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 때 눈으로 더 많이 담으려 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정말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내 얼굴이 나의 동의 없이 여기저기 떠다닌다. 내 복싱선생님도 내 운동모습을 찍어서 선생님 스토리에 올리고, 줌바 선생님도 수업 영상을 찍어서 올린다. 

'영상 올려도 괜찮나요?'라는 질문은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얼마나 사진 찍고 기념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페낭에 가서는 여기저기서 촬영하는 사람들의 카메라에 '화'가 났다. 이 촬영에 대한 화는  말레이시아 페낭의 유명한 관광지 '페낭힐'이 최고였다.


페낭힐에 올라가는 열차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질 만큼 열차도 아름답고 올라가는 그 경관도 너무 예쁘다. 나는 내 아이들과 이 경관을 즐기고 싶어서 열차의 가장 맨 앞칸에 탔다. 타면서도 

'아 제발 영상만 찍는 사람들이 적었으면 좋겠다.'라고 마음으로 바랬다.

같이 탄 중국커플은 둘 다 가장 맨 앞에 서서 카메라로 열차가 올라가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 둘이 맨 앞에서 열차의 유리를 딱 막으니, 그 열차에 타 있는 사람들은 그 핸드폰 화면을 통해 풍경을 봐야 했다. 그 커플 외에도 세네 명 정도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열차가 올라가면서 보이는 창문밖의 풍경을 담느냐고 바빴다.  


페낭힐 출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089519&memberNo=41739456



' 제발 그만 촬영하시면 안 될까요? 저는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보고 싶어요.'

' 아마 당신이 찍는 그 화면, 인스타그램에 #페낭힐이라고 치면 수백 개가 올라와 있다고요.'

' 영상 찍느냐고 지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의 소리가 요동쳤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미집까지 대동한 그 커플의 화면만 쳐다보느냐고 화면밖의 풍경을 놓쳤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풍경을 감상하며 올라와야 할 그 십여분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 외에도 지나가다 보면 핸드폰을 세워두고 틱톡을 찍는 청년들, 나를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는 건가 싶은 셀카족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의 사진 찍기를 보면 '젊음이 예쁘다' 보다는 '안타깝다'라는 생각이 먼저 서는 건, 이미 그들의 삶이 '보여주기용' 삶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아서가 아닐까 싶다.

꼭 인도네시아가 아니더라도 SNS를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SNS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위해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든다. 현재는 '배경'이고 SNS가 '진짜'인 것처럼.


SNS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다. 기록하거나 찍지 않으면 '불안'하게 말이다.  여행지 가서 핸드폰으로 영상과 사진을 찍느냐고 진짜 꼭 내 눈으로 담고 감상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사람들도 생각하면서 촬영하는 '매너'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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