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이 중요한 이유

by 월천강의

마흔 즈음에 경험한 대학원 생활은 저에겐 그야말로 '축복'이었습니다.

진학 당시 교육학, 심리학, 경영학 사이에서 고민을 했었는데, 최종적으로 MBA를 선택했던 이유이자 목적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만 살았는데, 과연 내 생각은 다른 사람에게도 통하는 생각인가?"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내 생각 체계는 튼튼한가, 다른 사람들도 내 생각에 공감할 수 있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으로 다른 사람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가, 사안에 따라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견고함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가..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90% 이상이 직장인으로 구성된 Class에서, 경영학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와 이슈에 대한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주장하고 교환해 가는 작업이 정말 좋았습니다.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즈음, 강렬한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 교수님께서 본인이 직접 기획하여 만드셨다는, 그전까지는 없던 수업, 'Business Model' 수업이었습니다.

혁신 이론의 대가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 이론부터, 블루오션 모델, IBM의 White Space 모델 등, 비즈니스와 관련된 모델 20여 개를 배우게 된, 정말 천금 같은 수업이었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해당 모델을 가지고,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분석한 후 이를 발표하고 공유했던 일입니다. 이를 통해 '좋은 이론의 힘'을 뼈에 박히도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론은 프레임(Frame)입니다. 어떤 현상을 보려 할 때, 그것을 하나의 관점으로 보게 해주는 창(窓)입니다. 그래서 좋은 이론은,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훌륭한 수단이 됩니다.

잠깐 예를 들어볼까요?






(대학생들 대상으로 재능기부로 해주고 있는) 경영학 수업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교수님, 학교에서 듣는 수업에서 팀 과제가 있는데, 팀원 중에 무임승차자가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 교수님의 말씀을 좀 듣고 싶어요."

(물론 사연은 이보다 많고 복잡했지만,) 저는 얘기를 들어준 후,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그려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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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들어보니, 결국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는 거네. 그렇다면, 그걸 이런 양식을 그려서 한 번 써볼래?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그 친구를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으니까, '배제'라는 의사결정을 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여기에 적어보는 거야.


여기서 A, B, C는 '구분'하는 내용이야. 예를 들어 학점 측면에서는 장점이 뭐고, 단점이 뭐고, 관계 측면에서는 장점이 뭐고, 단점이 뭐고.. 이런 식으로 써보는 거지.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장점과 단점의 양이 비슷하면, 가중치를 한번 둬봐... (후략)"


그리고, 다음 수업 때, 학생은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그려가면서 생각을 해봤더니, 그 친구와 계속 함께 하는 걸로 결론이 났어요. 제가 잘 설득해서, 지금은 참여도 잘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도 틀어지지 않고 과제도 잘 해결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론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생각을 할 때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려 쓰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하시면 이론에 대해서 훨씬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실 거예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크리스텐슨 교수는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라는 책에서, '좋은 이론의 힘'을 증명합니다. 동기, 전략, 자원 할당, 투자 의사결정 등 경영학의 주요한 이론들을, 우리의 삶에 현명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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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책의 서문 중 맨 첫 장을 제외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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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크리스텐슨 교수는 올해 1월에, 67세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당시(2012년)에는 암 투병마저 이겨내셔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하실 거라고 봤는데, 너무 일찍 가셔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 서문 중에서, 저는 특히 이 문장을 좋아합니다.

"좋은 이론은 변덕을 부리지 않으며,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만 적용하는 예외의 경우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 주는 보편적인 진술이 바로 좋은 이론이다"

서문 후반, '참된 인생'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도 찬탄을 자아냅니다.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잘 활용해서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이런 삶을 사는 것이 가능은 한 것일까요?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이 훨씬 많은 부끄러운 인생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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