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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Sep 14. 2016

[4] 캘리포니아!

[4] California!




햇살이 뜨겁고 하늘은 높다. LAX를 나와 달리는 차창 너머로 팜트리가 줄지어 지나가고 높고 청량한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다. 한여름의 7월 이 곳 캘리포니아의 모습이다.  

 

도로 옆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는 익숙한 단층 상가들도 보인다. 패밀리 레스토랑부터 타코집, 햄버거집, 커피 체인점, 주유소 등을 지나치고 얼마 가지 않아 다른 곳에서 같은 종류의 것들을 다시 만난다.

 

“오니 좋지?”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골프에 푹 빠진 엄마의 피부는 골프 선수처럼 새카맣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보다 건강해 보이는 엄만 앞 차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하이톤으로 나에게 물어본다. 6개월 만에 본 딸이 무척이나 반갑나 보다. 엄만 1년에 6개월 이상은 이 곳에 머물러야 하는데 미국 땅에서의 거주할 수 있는 신분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늘 한정되어 있다. 엄마가 한국에 와 있을 때에도 난 서울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2주에 한 번 주말에 보는 것이 그나마 자주 보는 편이다.

 

올해 새 직장을 가지면서 학생들처럼 3주 정도의 여름 방학이 생겼다. 사실 방학 동안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일들을 찾아서 돈을 벌까 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주최하는 여름캠프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마침 있다고 하길래 쉼도 가지면서 크진 않지만 돈도 벌겠구나 했다. 그런데 그 여름캠프가 부분적으로 학기 중 주말에 열리는 것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주말에 일터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주말에 이어 방학에도 학교를 계속 나가야 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모양의 쉼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의하긴 어렵지만, 내 머리 속에선 어찌 됐건 나만의 쉼 같은 시간을 주말에도 여름에도 제대로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그램 일부 중 학기 중의 토요일로 옮겨진 시간만 맡아하기로 했다.

 

20일이 주어졌다. 일을 하려고 세워놨던 방학의 계획이 틀어지면서 없었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목돈이 주어질 때의 드는 그런 신나는 느낌이었다. 선물 같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하며 나에게 물어보는 동시에 뜨거운 햇살과 높은 하늘이 뚜렷이 머리에 그려졌다. 그리고 엄마가 생각났다.

 

20일 동안 엄마와 오롯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바쁜 한국에서의 외부적인 요소들로부터 눈과 마음에서 흔쾌히 멀어질 수 있는 시간. 내 옛 추억이 묻어있는 곳에서 그때 느끼던 해와 바람과 달을 한없이 느낄 수 있는 20일의 시간. 이건 가져야만 하는 기회였다.

 

둘만의 여행을 가볼까, 어디로 가면 좋을까, 새로 이사 간 동네 주변에는 어떤 카페들이 있을까, 엄마를 따라 골프 연습장도 몇 번은 나가야겠지, 이 참에 골프도 좀 배워볼까, 맛집들은 어디가 있었지, 이제 졸업까지 마지막 일 년을 남겨두고 있는 동생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볼 수 있겠지?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엄마는 전화 너머로 와서 편하게 있다가 돌아가”라고 간결하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덕분에 무엇을 할까에 대한 생각이 비워졌다. 그러더니 기대가 내 마음을 꽉 채웠다. 공항에서 비행기 정비 문제로 하루 연착이 된 것도, 옆 좌석의 말 많은 세 개구쟁이들의 수다스러움도, 총 11시간의 비행 중 두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뜬 눈으로 있었기에 피곤해진 내 몸과 정신도, 어느 것 하나 나쁠 것이 없었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조금 열어둔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시원하다. 엄마와 함께한 지 10년이 넘어 탁할 대로 탁해진 은색(?) 차는 여전히 튼튼해 보인다. 15년 함께 하자던 엄마의 바람을 정말 들어줄 모양이다. 아는 사람 몇 없는 외로운 미국에서 말만 못 할 뿐 엄마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나며, 여전히 옆자리의 오랜만에 보는 딸을 보는 대신 앞 차를 바라보며, 안정적으로 잡고 있던 핸들을 아이 머리 쓰다듬는 것처럼 쓸어내린다.

 

엄마는 대개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지루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운전하는 엄마라지만, 차 안에서의 엄만 항상 편안해 보였다. 그 편안함은 안전함에 매우 민감한 나 조차도 아무 걱정 없이 깊은 잠을 자게끔 하고, 차창 밖의 풍경을 마음껏 눈, 코, 입, 가슴으로 들이마실 수 있게 한다.

 

이제는 나이 60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다. 이번엔 내가 엄마를 옆에 태우고 운전을 할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엄마도 이젠 좀 쉬어야지”라고 얘기해 보지만 도통 엄만 본인의 운전대를 넘기려 하지 않는다.

 

편안하게 쉬다가 돌아가길 원하는 엄마라지만, 서른인 딸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일까?

 

너무나도 완곡히 핸들을 주지 않는 엄마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무쪼록 이번 20일 동안 운전을 할 때 곤두세워야 할 내 신경조차도 쉴 수 있겠다. 그리고 조수석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할 찰나에 스르르 눈꺼풀은 내려앉고 만다.


역시나 울 엄만 예전도 그리고 지금도 내가 뽑는 최고의 드라이버다.





<엄마에 관하여> 메거진은 "[1] 20일의 여름 여행, 엄마에게로"부터 시작되는 시리즈 글의 모음입니다. 1편부터 읽어주시면 글의 흐름과 이해해 도움이 되실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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