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lah Aug 23. 2016

[2] "엄마에겐 딸이 필요해"

[2] "Moms need daughters"

“엄마에겐 딸이 필요해.”


딸 없는 엄마들이 들으면 죄송스럽게 생각은 할까 모르겠다.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라던가, 포동포동한 엄마의 팔에 내 팔을 걸고 상점들이 줄지어있는 거리 혹은 시장을 누빌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같이 집을 나설 때나 소파에 앉아서 가족 간의 비밀을 나에게 조심스레 꺼낼 때,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아 소곤소곤 수다를 떨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럼 듣는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맞아,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해” 하며 애교 섞인 말투로 다문 머리 안에서 혼잣말한다.


부산 사투리가 제 1의 언어인 엄마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자란 나라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 내뱉을 수도 있는 그 짧은 한 마디가 왜 그렇게도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지 의문이다. 더욱이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들 중 하나, 사랑한다는 말을 부모님께 입으로 말한다는 것은 아직 꿈 조차도 꿔보지 못했다. "I love you"도 마찬가지다. 영어로의 사랑 표현은 한글보단 좀 더 편하게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영어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 안에서의 사랑 표현에 있어서는 아주 넉넉하다는 이유를 대며 나도 한 번쯤은 입을 열고 말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엄마 아빠에게 내 마음을 표하는 건 항상 글이 대신했다. 문자를 보내거나 엽서나 카드, 편지나 액자로 수줍지만 덤덤한 척하며 건네곤 한다.


오히려 엄마 마음에 상처가 될 말들은 입 밖으로 잘도 꺼내왔다. 아마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랬을 것이다. 심지어 말로만 아닌 몸으로까지 말이다. 대학시절, 미국의 메릴랜드 주 안의 볼티모어라는 도시에 위치한 학교에 재학 중이던 나에게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던 엄마가 나를 볼 겸 매 주일마다 메릴랜드로 운전을 해서 왔었다. 주일에 교회를 가는 엄마는 버지니아에 있는 한인교회를 나가지 않고 내가 나가고 있던 메릴랜드의 교회로 오곤 했다. 목사님과 말씀이 좋았기도 했지만 엄만 날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방학 땐 수업을 듣지 않거나 선교나 여행을 가지 않을 때면 버지니아 집으로 가기도 했다. 그럴 땐 엠트랙 기차를 타고 가거나 아니면 엄마가 날 기숙사 앞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태워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날 픽업해서 버지니아로 가던 차 안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린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서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왼쪽 귀에 펑퍼진 엄마의 손이 닿임을 느꼈다. 사랑의 매의 강도가 최고조였던 이 날, 난 내가 귀를 맞았던 건지, 귀가 아니라 뺨이 었는지, 아니면 내 왼쪽 귀 머리에 손바닥만 한 꿀밤을 맞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제대로 기억을 하는 건, 그 순간이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난 엄마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마침 버지니아를 들어서고 기차역을 지나던 찰나였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역에 차를 세웠고, 난 엄마를 뒤로한 채 문을 닫았다.  


이 일이 있은 뒤 엄마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에게 귀도 뺨도 머리도 아닌 몸이 아닌 다른 부분들에게 꿀밤을 먹였다. 반복되는 일이라 놀랍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몸은 다 컸지만 난 그때 제2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꿀밤 수난을 겪게 한 것이 수년에 걸쳐 마음에 걸렸는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이후, 엄마는 그때 나에게 왜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어느 하루, 미안하다며 갑작스레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눈물에 놀랐지만 난 당황한 기색을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도, 맏딸의 외양적인 신분을 지키며, 내가 그랬으니 엄마가 그럴 수도 있지, 그랬어야만 했겠지 하며 무덤덤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엄마의 고백이 있던 그 날, 그 날 따라 엄마의 어깨가 작아 보였다. 어느새 이렇게 낮아졌나. 이 낮아진 어깨를 언제쯤이면 안아줄 수 있을까. 위로가 될까. 언제 사랑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엄마의 꿀밤 이전에 내가 했던 그 모든 불필요했고 딱딱했던 못생긴 말들을 한 것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언제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을까.


두런두런 생각을 하다가 내 왼쪽이 조용해진 것을 깨달았다. 옆을 보니 콧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한 세 남자아이들은 어느새 그들의 언어를 멈추고 눈은 감은채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그들의 머리는 한쪽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느 순간 그들은 잠들었다. 기내의 조명도 어두워진 지 오래다. 이 세 아이들처럼 내 입에서 나와야 하는 단어들과 문장들도 엄마 아빠 앞에선 잠든 지 오래다. 심지어 코마 상태인 것은 아닐까… 그래도 기적은 일어나기에. 죽은 사람도 살아난다는데, 완벽히 살아있는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이미 엄청나게 주어졌기만 했던 기회들을 돌아보면.








<엄마에 관하여> 메거진은 "[1] 20일의 여름 여행, 엄마에게로"부터 시작되는 시리즈 글의 모음입니다. 1편부터 읽어주시면 글의 흐름과 이해해 도움이 되실 거예요 :)

매거진의 이전글 [1] 20일의 여름여행, 엄마에게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