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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Sep 25. 2016

[6] 엄마와 집

[6] Mom and Home



도로에 있은지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갈 때쯤, 눈에 힘을 부릅 주고 있는 내 의지가 힘겨워할 때쯤, 우리는 프리웨이(Freeway: 고속도로와 같은)에서 나가는 Exit 사인을 따라간다.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서 우회전을 하니 드디어 목적지가 보인다. 집이다! 6개월 만이구나. 지난 1월 엄마의 이사 용건으로 열흘 정도 잠깐 미국에 방문했었는데 그때 정했던 집이 바로 이 집이다. 세 번째로 본 집이 이곳이었고 생김새며 구조며 위치 등 많은 부분에서 마음에 들었었다.

 

먼저는 엄마가 혼자 지낼 곳이기에 크기가 크지 않게 적당했다. 10분 거리엔 엄마의 20년 지기 친구가 살고 계시고 5분 거리엔 상점들이 있어 엄마가 덜 외로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 짓는 집이지만 로스앤젤레스 중심지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 위치했기에 가격도 괜찮았다 (물론 loan을 받아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야 하지만 이 부분은 나의 영역이 아니므로…). 그래서 세 번째로 본 이곳을 집이라 정했고 10일 안에 “House Hunting”은 기분 좋게 해결되었다.

 

그땐 집이 지어져 가던 중이라 뼈대만 있었는데 이젠 겉모습까지 잘 차려입고 있다. 흰 벽과 적갈색 지붕과 창문틀이 어우러져 가보진 못했지만 유럽의 집들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혼자 들떠하며 생각해본다. 차고 문을 열고 엄만 주차를 한다. 주차공간엔 엄마가 아까워 버리지 못한 10년 된 녹색 유리 식탁과, 동생과 어렵게 만들었다고 하는 큰 보관함이 있다. 가로가 2m 50cm, 세로 2m쯤 돼 보인다.

 

“무슨 짐이 그렇게 많길래 차고에 보관함까지 있는 거야?”

 

짐이 많은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차에서 내리면서 엄마에게 핀잔을 준다. 이 집에서 만큼은 집 “안”에 많은 물건을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 엄마의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난 늘 엄마의 버리지 못하는 습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대학교 졸업 이후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와 약 2년간 엄마와 동생과 셋이서 살던 때도, 대학원 시절엔 엄마와 동생이 살고 있던 좁은 집을 방문할 때에도 난 매번 투덜거렸다. 쓰든 쓰지 않든 많은 물건들로 정리가 되지 않은 모습을 유지한 채 빽빽한 공간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갑갑했다. 또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엄마의 손 덕분에 갈수록 짐은 늘어져만 갔다. 그래도 내 본성이 적응을 나름 잘하는 편인지라 며칠이 지나면 그 상황에 무뎌지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나, 매 순간, 매 상황마다,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이것도 엄마의 한 부분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난 왜 그런 엄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든지 모르겠다. 사람은 다르기 마련인데 말이다. 아참. 그러고 보니 차고도 집 “안”이지 않은가?

 

엄마가 말하는 집 “안”은 그럼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신발을 벗고 엄마보다 방문객인 내가 먼저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간다. 한 사람씩 올라가도록 만들었는지 폭이 좁다. 장시간 비행기에서 앉아있던 탓에 부어있는 불쌍한 두 발을 빠르게 움직여 다다닥 2층으로 들어선다.

 




오른편으로는 오후의 느지막한 햇살이 차분히 들어오는 커튼이 쳐진 창문을 비롯해 부엌과 네 명이 앉아 먹을 수 있는 나무 식탁 그리고 의자들이 놓여 있다. 좌편으로는 예전 집에서 쓰던 앤틱 소파와 티브이, 그리고 엄마가 새로 장만한 앤틱 시계와 선반이 있다. 검정과 흰색의 사각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는 새로 보는 싱글 의자도.

 

현대적인 느낌과 앤틱 느낌이 섞여있다. “네 엄마는 천생 여자야”라고 큰 이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꾸미는 걸 좋아하고 소품들을 장만하는 걸 좋아하고 그것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엄마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아빠가 나보다 한 달 먼저 이 집을 방문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집에 대해 했던 첫마디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아빤 집이 아름답다고 했다. 경상도 남자의 입에서 나온 “아름다워”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 하며 전화 너머로 키득키득 웃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윽고 3층으로 올라가 방을 둘러본다. 한 방은 엄마의 침실, 그리도 다른 한 방은 동생을 위한, 나를 위한, 또는 다른 손님을 위한 방인 듯하다. 엄마의 방 한쪽 벽엔 구스타브 클림트 Gustav Klimt의 “The Kiss” 페인팅이 방을 노랗게 물들인다. 어느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건너편 방 안엔 내 대학시절 때부터 쓰던 조그만 화장대가 있는데 그 위엔 엄마가 애리조나 Arizona로 여행을 다니고 돌아오면서 기념품으로 사 온 돌로 만든 주황색 초 받침이 놓여 있다. 책꽂이엔 나와 동생의 책들 일부가 꽂혀있다.

 


 


미국에서의 거쳐갔던 집들 중에 이 집이 그나마 제일 정돈되어 보인다. 차고의 보관함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대략 짐작이 간다. 열어 볼 생각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을 위한 그리고 딸의 추가적인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엄마의 귀를 위한 것일 테다. 아래서 엄마가 복숭아를 먹으라고 부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과일을 준비해두고 있다.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가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되는지 엄마의 두 눈썹은 저만치 올라가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엄마가 제일 기다릴법한 말을 하는 게 좋겠다. 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엄마, 아빠 말이 맞았어!”









<엄마에 관하여> 메거진은 "[1] 20일의 여름 여행, 엄마에게로"부터 시작되는 시리즈 글의 모음입니다. 1편부터 읽어주시면 글의 흐름과 이해해 도움이 되실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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