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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Sep 29. 2016

[7] 집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

[7] Another Home-Related Story


미국에서의 삶에 이어 한국에서 마찬가지로 나의 이사는 계속됐다. 후덥지근했던 지난여름, 난 또 한 번 이사를 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있었다.


그 당시 용산에서 살고 있던 오피스텔의 계약 만기가 두 달 채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고 오피스텔의 주인에게서 새로운 통보를 받았다. 반전세에서 월세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고 있는 금액의 배를 내야 된다는 얘긴데 막상 그렇게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니 이사를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먼저는 알아보고 찾지 못하면 재계약을 해야 하겠거니 했다.





7월 한 달간,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서울에 올라왔다. 마침 엄마가 한국에 몇 달 동안 있던 시기라 집을 함께 보고 정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보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집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쁘게 꾸며진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는 것도 좋아한다. 집을 살 것도 아닌데 살 사람 마냥 구석구석 살필 뿐만 아니라 질문 또한 한다. 바닥과 벽 색깔부터 시작하여 부엌과 방의 구조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수납장은 몇 개가 있는지, 몇 층에 있어야 뷰와 환경이 좋을지, 거주지역의 시설들은 무엇이 있는지, 가구는 어디에 두고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먼저 분석하고 집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이런 엄마의 성향을 보고 배운 것일까, 난 먼저 몇 개의 집을 보았고, 갖추어야 할 몇 가지 항목들을 가지고 있는 세네 개 정도의 집을 선택해 놓았다. 그리고 부산에서 올라올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와 함께 첫 주말엔 그 당시 거주하고 있던 용산을 중심으로 집을 살폈고, 둘째 주말엔, 서울을 벗어나 분당에서 집을 살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용산으로 돌아와서 다른 곳을 찾느라 고군분투했다. 엄마와 난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7월의 주말만 되면 피곤에 더 이상 걷지 못할 정도가 되어 하루를 마쳤다. 엄마는 새벽 6시에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올라와, 밤 8시에 서울역에서 내려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30년 어린 나보단 피곤이 갑절일 텐데, 부산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나를 남겨두고 간다며 엄마만의 애교스러운 말투로 오히려 내 걱정이다. 몸이 쑤신다는 말은 내가 하고 있다. 지난 일 년 동안 서울에서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딸이 다음 주말까지의 7일 동안 혼자 잘 지낼 수 있으려나 문득 마음이 쓰이나 보다. 한 번에 집을 고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을 향해 엄마는 "힘들다" 대신 "괜찮다" 한다. 그리고 다음 주 또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좋다"라고 한다. 예상치 못하게 매 주말마다 엄마가 부산과 서울을 왕래를 해야 할 줄이야. 엄마는 일주일 동안 나를 못 볼 생각에 눈이 더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다. 한동안 못 볼 연인처럼 슬퍼한다.


7월의 마지막 주, 이날도 어김없이 우리는 집을 보았다. 마지막 한 군데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한 군데도, 창문에서 밖을 내다봤을 때 왼편에 위치한 집 내부가 보이는 관계로, 탈락 리스트에 옮겨지게 되었다. 때마침 살고 있던 오피스텔의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고(혹시 6개월 연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었다), 반전세의 금액 중 매달 내야 하는 금액을 조금만 인상시켜 6개월 더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8월이면 엄마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한 달간의 수고로 쉼이 필요할 것 같았다. 주인 말대로 그리 하겠다고 했다.


이날로서 집 사냥은 끝이 났다. 인정이 많으시고 진정성을 지니신 부동산 사장님은 내 집을 찾아 주지 못해 미안해하셨다. 우린 정말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렸고, 집을 찾진 못했지만 오히려 내 마음은 비어짐을 느꼈다. 목표물을 갖지 못했는데 속은 후련했다.


그 대신 한 달 동안 주말마다 엄마와 서울의 거리를 누볐다. 내가 머무를 다음 공간이라는 목표를 보고 함께 걸었다. 함께 여러 종류의 대화를 나누며 발맞춰 걸어 나갔다. 사람이 생각한 계획엔 수도 없이 많을 오차가 있겠지만 계획이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목표물을 얻든 얻지 않든, 그 순간과 과정이 기쁨이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이어서야 생각해 보건대, 어쩌면 내가 가졌어야 했던 목표는 새 공간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힘들다 하기보단 매주 딸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던 엄마의 목표가 내 것과 달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한다는 것. 상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 시간 자체에 집중하는 것. 이 것이야말로 내가 가졌어야 했던 생각이 아니었을까.


나보다 앞서 산 엄마의 생각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기란 어렵다. 찾았다 싶으면 한 두 가지 걸리는 게 보이기 마련이다. 아마도 내가 까다로운 부분이 없잖아 있기 때문일 수도. 그리고, 더 좋은 곳이 가까운 훗날에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엄마에 관하여> 메거진은 "[1] 20일의 여름 여행, 엄마에게로"부터 시작되는 시리즈 글의 모음입니다. 1편부터 읽어주시면 글의 흐름과 이해해 도움이 되실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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