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Work on a Blank Page
빈 페이지를 무엇으로 채워볼까, 채워야만 허기가 채워질 것만 같다. 아니, 빈 페이지를 보고만 있어도 삼삼한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미뤄놓은 업무가 산더미이지만, 잠시 제쳐두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지금 가져보고 있다. 타 카페에 와서 베이글과 차이티라떼를 시키고 앉아서 노트북을 켠다.
더워지는 계절, 에어컨에서 더위를 날려버릴 온도의 바람은 아직 나오지 않지만, 나는 내 몸의 저체온증 때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따뜻한 라떼를 주문한다.
책방을 안 간지도 수개월째. 사실 몸의 체온은 낮더라도, 내 영혼의 체온은 수개월째 가뭄을 겪고 있다.
두터운 표지와 빳빳한 종이의 감촉을 좋아한다. 두 손으로 책을 잡고 읽는 행위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디지털과는 먼 내가, 책방을 못 들리고 있다 보니, 며칠 전 자정이 넘은 밤, 온라인으로 디지털 서적 한 권을 구매했다. 잘 읽힐까? 의문을 가지며, 아이패드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기 시작했다. 밤이 깊은지라, 몇 장만 읽고 자야지 했는데, 순식간에 한 권이 끝나버렸다.
디지털 서적은 몰입도가 낮을 거라고, 읽는데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도 이제 아날로그에서 벗어날 수가 있구나.
한밤중에 한층 기분이 좋아지면서 성취감을 느끼며 잠에 들던 날. 오늘 이 시간은 그날의 연장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