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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모국어라는 단어보다는 '국어'라는 단어가 익숙한 까닭은, 태어나 거의 모든 순간 내가 듣고 쓰고 읽는 언어가 당연히 모국어인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하게도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고 잘 만들어주신 세종대왕님 덕분에 언어를 익히는 것조차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게다가 심지어 무한한 표현력과 다양한 변형, 섬세한 감정까지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였다. 국어를 전공하거나 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학생이던 시절부터 국어를 참 좋아했다. (하지만 이과 학생이었다는 것이 반전...) 수능 공부를 하며 읽었던 문학, 비문학 지문들도 시험을 위한 공부라기 보다는 정말 좋아하는 마음으로 읽으며 즐겼다.
국어를 공부할 때면 왠지 이해타산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품어주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즐겁고 기쁠 때에도 서럽고 슬픈 순간에도 늘 나를 품어주는 곳. 내가 시작된 곳이자, 언제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돌아갈 장소. 조금 서투르고 휘청이더라도 밑도 끝도 없이 나를 받아줄 것이라 믿고 있는 어딘가.
하지만 외국어를 익히고 쓰는 순간들은 그와 참 다른 기분이었다. 늘 마음속에는 날카로운 긴장의 조각 하나를 품고서, 입 안에는 차가운 얼음 하나를 물고 있는 기분. 조금만 실수를 해도 바로 차가운 시선과 지적이 날아와 꽂힐 것만 같았다. 친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빌린 옷에 몸을 꾸역꾸역 집어 넣고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옷이 상할까 염려하며 맘껏 움직일 수도 없는.
물론 외국어만이 지니고 있는 또다른 신선한 매력이 분명히 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썼을 뿐인데, 마치 나의 또 다른 자아가 하나 더 생긴 듯한 기분. 나의 일상에서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하지 못했던 일들을, 나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국 어딘가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서 하게 되는 것처럼. 알게 모르게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 같은 것들.
하지만 그 모든 새로이 느껴지는 감정들과 해방감들이 내가 지닌 모국어의 바탕 위에서 누릴 수 있는 감정임을 안다. 내가 지닌 모국어가 없다면, 다른 언어의 반경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새로움과 해방감, 흥미로움이 아닌 서러움과 슬픔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모국어의 소중함을 꾸욱 담아 시야에 들어오는 나의 언어들을 찬찬히 읽어 본다.
참 아름답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