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추신 (끝내, 더 전하고 싶은 말)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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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지쓰기 광이였다. 과거형이랄 것도 없이 여전히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태어나 가장 많이 써 본 글의 형식이 일기와 비슷한 비율로 편지글 인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비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초등학생 시절 여자아이끼리 주고 받는 펜팔 노트, 수업시간에 몰래 주고 받는 딱지모양 쪽지.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마치 선거운동이라도 하는 것 처럼 백장이 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샀다. 카드를 써서 건네어 줄 친구들의 목록을 만들고, 그 친구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의 카드를 매칭하고. 나의 쇼핑 중 가장 큰 비중은 좋아하는 캐릭터와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를 잔뜩 사는 일.

상대방에 지닌 나의 애정도와 비례하여 편지지와 봉투, 스티커를 신중히 고른다. 그리고 Dear...을 편지지 첫 줄에 커다랗게 쓰면서 나의 편지쓰기는 시작되었다. 실은 얼굴을 보고서도 할 수 있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지만, 소통의 시차를 두고 편지지를 통해 전하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조금 더 감정을 다듬어 고를 수 있었고, 내가 지닌 언어의 데이터 베이스 중에서 가장 어울리고 예쁜 것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아차, 무언가 실수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새로운 편지지를 꺼내어 다시 쓸 수도 있는 안전한 매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을 꺼내지 못하고 얼렁뚱땅 편지를 마무리하게 될 때도 있다.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종이 위에서 수다를 떨다 보니 정말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깜빡 잊어버렸을 때. 혹은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종이 위에서조차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빙글 빙글 맴돌다 편지지의 말미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럴때 나에게 유용한 것은 바로 추신이었다. Postscript. 주로 P.S 라고 줄여서 쓰는 바로 그것이다.

어린이였을 땐 p.s 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그냥 편지 맨 끝에다가 p.s.라 덧붙이고 나면 왠지 그럴듯해 보이는 어린 마음에 별 의미도 없이 한 마디 보태어 써 보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추신의 의미로 편지의 말미에 한 마디씩 보태어 쓰고는 한다. 편지의 본문에 미처 쓰지 못했던 것을 덧붙여 써야만 할 때. 실은 편지의 시작부터 입 안에 가득 머금고 있었던 말이지만, 언제쯤 이 말을 꺼내야 할 까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을 때.


덧, 추신이라는 기특하고도 고마운 그것이. 아, 맞다! 실은 말이야 - 하는 귀여운 능청스러움으로 진짜의 내 마음을 건넬 타이밍을 마련 해 준다.

끝내, 더 전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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