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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만화책 읽기를 참 좋아했다. 365일의 350일 이상은 동네 만화책 대여점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빌려온 만화책은 오빠와 함께 읽었기에 내가 섭렵한 만화책의 장르는 매우 다양했다. 학원물, 액션, 역사, 스포츠까지. 오히려 순정만화보다 그 외 장르의 만화책을 훨씬 더 많이 읽었다.
나처럼 만화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 꼭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고전같은 만화책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슬램덩크가 아닐까. 꽤 최근에는 영화관에서 극장판으로도 개봉을 했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강백호가 짝사랑의 순정 하나로 무작정 농구를 시작하며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방황 고난 열정 우정 패기... 떠오르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모두의 마음 속 어딘가를 울컥이게 했을 것이다.
강백호가 속한 북산고교는 고교 농구팀 중에서 최약체 팀이라 불리는 팀이다. 심지어 존속의 여부조차 위태로운 고요 농구팀이, 쟁쟁한 강팀들과 겨루며 이루어내는 격동의 드라마가 만화의 주 내용을 이룬다. 비등한 실력의 두 팀이 겨루더라도 매 순간이 긴장과 갈등의 연속일텐데, 심지어 어느 팀과 겨루어도 모두가 기대 하지 않는 약체팀의 위치에서 우승후보에 가까운 팀들과의 대결이라니.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모두가 기대도 응원도 하지 않는 냉담한 시선까지도 이겨내야 하는 승부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만화의 경기 장면들 속에서도 결정적인 순간들 마다 감독은 타임아웃을 외쳤다. 물론 부상이나 선수 교체가 불가피한 상황들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의미의 타임아웃들도 있었다. 이대로 흘러가서는 이 흐름을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때. 지금의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다시 새로운 분위기로 돌아설 수 없을 것 같은 결정적 순간들마다 그들은 '잠시 멈춤'을 택했다. 문자 그대로 '작전상의 타임' 인 것이다.
하지만 그 멈춤은 멈추어 있음이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마음가짐과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시적 멈춤이라는 것. 어쩌면 놀랍도록 냉철하고 분명한 판단력과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끝까지 가 봐야지 싶기도 하고 여기서 멈추면 그냥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섣불리 멈추어지지도 않는 순간들. 누가 여기에서는 이렇게, 이 쪽으로, 몇 분 뒤 저기로 가. 매뉴얼처럼 친절하게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언제 멈추고, 또 다시 나아가야 할 지 결정하는 것도 오롯이 나의 몫이기에 주저하게 되는 마음.
멈춤이 필요한 순간, 발 끝에 힘을 꽈악 주고 양 손으로 크로스 모양을 만들며 '타임'을 외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지닐 수 있기를.
내 인생의 키를 손에 쥐고서,
스스로 완급 조절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