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손내밀어 준 나의 비밀친구 -
나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내가 가끔 '투명인간'이 된다는 거예요.
혹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우와! 투명인간이라니, 멋지다!"
그런데 말이에요, 나는 전혀 멋지지 않아요.
쉬는 시간, 다현이가 친구들에게 물었어요.
"점심시간에 피구 할 건데, 같이 할 사람?"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어요.
"나... 나도 같이 할래!"
그런데 다현이는 내 쪽은 보지도 않았어요.
"재민이, 윤아, 민서, 지원이! 좋아, 그럼 운동장 철봉 옆에서 모이는 거다!"
내가 바로 앞에서 말했는데도,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 순간, 나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렸어요.
뿌옇게 사라지는 것처럼요.
수학 시간에도 그랬어요.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쓰셨어요.
"자, 누가 나와서 풀어볼까요?"
나는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어요.
"저요!"
그런데 선생님은 말했어요.
"오, 채윤이, 가람이, 라온이. 세 명 다 나와서 풀어볼까?"
내 이름, '하은이'는 없었어요.
또 한 번,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못 본다는 건, 정말 외로운 일이에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것 같거든요.
그럴 때마다 나는 학교 운동장 구석, 등나무 벤치에 가요.
혼자 조용히 앉아서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봐요.
그날도 그랬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어요.
"너, 네가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어요.
거기엔 조그만 키, 동그란 눈, 초콜릿색 머리를 가진 남자아이가 서 있었어요.
"넌 누구야? 나를 어떻게 알아?"
그 아이는 웃으며 말했어요.
"비밀. 근데 넌 하은이지? 새봄초등학교 2학년 4반."
나는 더 놀랐어요.
"정말... 나를 아는 거야?"
"당연하지. 난 널 쭉 지켜봤어. 넌 진짜 투명인간이 아니야."
나는 고개를 숙였어요.
"그래도 가끔은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
말해도 안 들리고, 손을 흔들어도 안 보여."
그 아이가 말했어요.
"그럴 땐, 네가 먼저 말하면 돼. 나 여기 있어! 하고.
누군가가 못 보면, 다시 한 번 더 말하면 되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
내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
사실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었어요.
나를 진짜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내 마음 속에 조그만 새싹 하나가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무거운 흙을 이겨내고 고개를 빼꼼 내민 새싹이요.
다음 날 아침, 나는 북적이는 교문 앞에서 같은 반 연우를 보았어요.
'내가 먼저 해보는 거야.'
나는 용기를 내서 말했어요.
"연우야, 안녕?"
연우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어? 하은아! 안녕! 오늘 일찍 왔네?"
내가 건넨 인사 하나에 내 마음은 갑자기 따뜻해졌어요.
"응!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났어."
그 순간, 교문 옆 화단의 민들레도 조금 더 활짝 피어난 것 같았어요.
그렇게 내 비밀은 조금 달라졌어요.
여전히 가끔 나는 투명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내가 먼저 말하면 된다는 걸.
내가 여기 있다고, 내가 보이고 싶다고, 내가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면 된다는 걸.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아요.
아,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
그 날 벤치에서 만났던 그 남자아이 말이에요.
그 아이는 그 뒤로 한 번도 보이지 않았어요.
혹시... 그 아이가 진짜 투명인간이었던 걸까요?
하지만 괜찮아요.
나는 이제 투명해져도 괜찮으니까요.
내가 나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나 여기 있어! 라고 말할 줄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고마워, 비밀 친구.